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총파업의 균열 조짐이 감지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에는 연이은 파업 대오 이탈과 업무개시명령에 따른 비조합원 복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업무개시명령의 성과가 일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대통령실과 정부가 연일 이번 파업으로 취약 계층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민주노총에 불리한 여론 지형을 만들고 있다.
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파업 여파로 평시 대비 5% 수준으로 급감했던 시멘트 출하량은 업무개시명령 발동 이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날 시멘트 출하량(11만7000t)은 업무개시명령이 발동 전인 지난달 28일(2만2000t)과 비교하면 5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물동량도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이날 오전 기준 전국 12개 항만의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평시의 81% 수준으로 집계됐다. 전날 같은 시간(64%)보다 17%포인트 높아졌다. 컨테이너 반출입량이 가장 큰 부산항의 경우 사실상 파업 이전 상황으로 돌아갔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의 약발이 먹힌 결과로 보고 있다. 여전히 민주노총은 강경 노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간 눈치를 보고 있던 비조합원들이 빠르게 현장으로 복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조합원의 운송방해 행위 등에 대한 엄중 처벌 방침을 밝히며 적극적으로 비조합원 호송에 나선 것도 영향을 미쳤다.
국토부는 이날까지 시멘트 분야 201개 운송사에 대한 현장조사를 마쳤고, 운수종사자 777명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서를 발부했다. 주소를 확보한 425명에게 우편으로 명령서를 송달했고, 이를 전달받아 업무개시명령의 효력이 발생한 차주는 178명이다. 5일부터는 이들을 대상으로 운송 재개 여부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1차 적발 시 최대 30일 운행정지, 2차 적발 시 면허 취소의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특수대형차는 통상 월 차량할부금만 200만∼500만원 정도 나가기 때문에 1∼2주일만 일을 쉬어도 차주의 타격이 크다”면서 “컨테이너나 정유업계 등에서는 비조합원을 중심으로 ‘복귀 명분차 어서 업무개시명령을 내려달라’는 요구도 있다”고 전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화물연대를 압박하고 나섰다. 공정위는 이날 오전 서울 강서구 화물연대 본부 건물과 부산지역본부 건물에 각각 17, 6명의 조사관을 보내 현장 조사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날 현장조사는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공정위 조사관들의 건물 진입을 막아 결국 무산됐다. 공정위는 이날 조사가 무산될 경우 향후 다시 현장을 찾아 조사를 진행하고, 계속 건물에 진입하지 못하면 화물연대에 조사 방해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공정거래법상 조사방해 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화물연대가 현장조사를 방해하자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화물연대 측을 강력 규탄했다. 공정위가 특정 사건의 조사와 관련 브리핑을 여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실이 직접 위원장 브리핑을 지시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이날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안전운임제 일몰 연장 법안을 야당 단독 상정했다. 교통법안심사소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 주재로 열린 법안소위에서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올라왔다. 이날 법안소위에는 소관 부처인 국토부가 참석하지 않아 개정안이 통과되지는 못했다. 대신 소위는 오는 9일 법안소위의 안건요구를 위한 출석을 요구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법안심의를 통해 교통소위에서 해당 법안이 추후 통과되더라도 상임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 본회의 절차가 남아있다.
국토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공동 성명서를 내고 “거대의석을 무기로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민주당은 국토위 교통법안소위 강행을 즉각 철회하라”고 강조했다.
◆철강 손실 1조 넘어… 산업 곳곳 피해 확산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9일째를 맞은 2일 산업계 전반의 피해가 계속 커지고 있다. 철강업계의 경우 제때 출하를 하지 못하면서 1조원대의 손실을 입었고, 완성차업계와 타이어업계는 생산물량이 출고되지 않아 감산 체제에 들어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전날까지 집계된 철강업계 출하 차질 규모는 1조1000억원 규모다. 이 가운데 5대 철강사인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세아제강, KG스틸의 출하 차질액이 8700억원 수준이다.
액수면으로는 정부가 출하 차질 규모를 파악한 업종(시멘트, 철강, 자동차, 정유업계) 중 철강업계의 피해가 가장 크다. 한국무역협회와 한국철강협회 등 경제단체와 업종별 단체는 이번 파업으로 피해를 입은 화주들의 손해배상소송 대행 작업에 착수했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이후 시멘트 출하량은 회복되고 있지만, 아직 레미콘 생산량은 평시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면서 건설 현장이 정상화되기까진 다소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전날 기준 전국 1219개 건설현장 중 727곳(59.6%)이 콘크리트 타설 불가 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파업 여파로 입주 지연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LH에 따르면, 화물연대 파업 이후 전국에서 시행 중인 431개 공공주택건설 현장 중 주택 건설에 들어간 224개 공구 중 128개 공구(57.1%)에서 레미콘 공급 차질을 빚고 있다.
전국의 휘발유나 경유 재고량을 모두 소진한 품절 주유소는 이날 오전 기준 52곳으로 집계됐다. 전날 오전(33곳)에 비해 19곳 늘었다. 지역별로는 서울·경기·인천 32곳, 비수도권 20곳이다. 전에는 화물연대 가입률이 높고 회전율이 빠른 수도권에 몰려있던 품절 주유소가 충청권 등 전국 각지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광주 금호타이어 공장은 전날부터 20~30% 감산에 들어갔다. 타이어를 쌓아둘 공간이 점차 줄어들자 오는 6일까지 생산량을 줄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기아 광주공장 역시 하루 2000대 생산되는 차량을 공장에 쌓아둘 수 없어 ‘로드탁송(개별 운송)’을 통해 제3의 차고지로 옮기고 있다. 기존에 확보한 차고지 외에 추가 공간을 물색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쇠구슬 쏜 혐의 화물연대 노조원 3명 체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파업 중 다른 화물차의 운행을 방해한 조합원들이 연이어 체포됐다.
부산경찰청은 화물연대 김해지부 사무실에서 조합원 A씨 등 3명을 체포해 수사하고 있다고 2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달 26일 부산신항에서 비노조원 화물 차량에 쇠구슬을 날린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비노조원 화물차 2대의 앞 유리가 파손됐고, 기사 1명은 깨진 유리에 목 부위를 긁혔다. 경찰은 A씨 등 3명이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며 쇠구슬을 발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울산 울주경찰서도 화물차량 운행을 방해한 화물연대 조합원 B씨를 체포했다. B씨는 이날 오전 9시쯤 울산시 울주군 한 시멘트업체 정문에서 출입 화물차량을 10여분간 막아서 운행을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화물연대 조합원 20∼30여명이 시멘트업체 앞에서 약식 집회를 하면서 출입 차량을 막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 중 B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나머지 조합원들에게도 차례로 출석을 요구할 방침이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울주서를 항의 방문해 석방과 면담을 요구했다.
경찰은 조합원들의 업무개시명령 불복에 대비했다. 경기남부청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이후 고발 사건이 다수 접수될 것에 대비해 ‘업무개시명령 위반자집중 수사팀’을 편성했다. 수사팀은 경기남부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장을 팀장으로 302명의 수사인력으로 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