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마음을 먹었을까. 그때. 늘 아파트 둘레길로만 산책을 다니던 내가 가보지 않은 길로 발길을 돌린 것은. 그곳에 길이 생긴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도 나는 한 번도 그 길을 가보지 않았다. 사람이 무감각한 건지, 아니면 무심한 건지 나는 언제나 그곳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다. 예전에는 일부러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다니곤 했는데 언제부턴지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져 버렸다. 나이가 들었다는 방증일 것이다. 간혹 모르는 길을 갈 때면 생경한 풍경이 주는 설렘과 호기심보다는 혹여 길을 잃지나 않을까 걱정부터 앞섰고, 그에 따른 심리적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거기에 더해 사람 사는 동네가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호기심과 모험도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날,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나는 평소 같지 않게 동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릴 때 읽었던 ‘비밀의 화원’이 문득 떠오르더니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동안 내가 무심히 지나쳤던 그 길이 비밀의 화원으로 통하는 문처럼 다가온 것이. 그 애절한 사랑 이야기와 주인공 어린 소녀가 마주쳤던 놀라운 풍경을 떠올리며 나는 그 길로 향했다. 길에 들어서니 오며 가며 지나면서 보던 겉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그저 똑같은 길이려니 생각했다.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품처럼 천변에 들어선 여느 길들과 고만고만하게 생겼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아니었다. 그곳은 날것의 자연과 인공의 구조물이 적당히 섞여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