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가 벌써 대설(大雪)이 되었으니/ 이번에 내린 눈 급한 것 아니로다/ 첫눈이 이미 이처럼 많으니/ 세 차례 큰 눈은 걱정이 없네/ 밤이 깊어지고 잠도 깊이 들어/ 눈송이 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창에 뿌리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창문을 열어보니 놀랍게 쌓였구려.” 고려 후기 문신 이규보가 시문집 ‘동국이상국집’에 남긴 시 ‘11월3일 많이 내린 눈을 보고’의 구절이다. 자고 일어나니 대설에 때맞춰 많은 눈이 내린 것을 반기는 마음을 표현했다.
대설은 입춘을 기준으로 보면 24절기 중 스물한 번째다. 태양의 황경(黃經·황도 좌표의 경도)이 255도에 도달한 때다. 음력 11월에 동지와 함께 한겨울을 알리는 절기다. 농부들에게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농한기다. 농촌에서는 이때 콩을 삶아서 메주를 쑨다. 메주를 볏짚으로 묶어 따뜻한 방에 두면 메주 뜨는 냄새가 진동했다. 지금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됐다. 조선 세종 때 이순지와 김담 등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독자적인 역법서(曆法書) ‘칠정산내편’은 대설에 “산박쥐가 울지 않고, 호랑이가 교미를 시작하며, 타래붓꽃이 돋아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