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성분인 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메틸이소치아졸리논(CMIT/MIT)을 호흡기로 들이마시면 폐 등 여러 장기로 퍼져 상당 기간 남아있다는 정부기관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이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에서 CMIT/MIT 노출과 폐 손상 사이 관련성을 보여주는 과학적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법원 판단이 재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가습기살균제 성분 체내 거동 평가 연구’ 결과를 8일 공개했다. 이 연구는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경북대와 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진과 공동으로 진행한 것이다.
과학원은 이 연구결과에 대해 “호흡기에 노출된 CMIT/MIT가 폐에 도달해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정량적으로 입증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다른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는 이번 CMIT/MIT 연구결과와 비슷한 국내 연구결과가 이미 나와 있다.
이번 연구는 CMIT/MIT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합성해 쥐의 비강(코)과 기도에 노출한 뒤 체내 방사능 농도를 관찰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실제 CMIT/MIT가 쥐의 비강·기도 노출 이후 5분 정도 지나 폐와 간, 심장 등에서 확인됐다. ‘정량 전신 자가방사선’ 영상을 통해 CMIT/MIT의 이 같은 이동은 시각적으로도 확인했다는 게 과학원 측 설명이다.
노출한 방사능량을 100으로 봤을 때 5분 뒤 폐에 분포한 양은 0.42, 일주일 뒤에는 0.08 수준이었다. 인체에 대한 가습살균제 노출은 장기간 반복적으로 진행된 경우가 많은 만큼 누적값을 고려한다면 실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폐에 도달한 CMIT/MIT 양은 이번 연구 결과값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CMIT/MIT에 노출된 다른 실험 쥐의 기관지폐포세척액(생리식염수로 폐포영역을 세척해 세포·액성성분을 채취한 용액)을 분석한 결과에선 폐 손상과 관련이 있는 염증성 사이토카인(염증 관련 신호전달물질)이 유의미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결과는 저널인용보고서(JCR) 기준 환경과학 분야 상위 5% 수준인 국제 환경 학술지 ‘인바이런먼트 인터내셔널’(Environment International) 12월호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게재된 논문을 통해 가습기살균제 관련 한국 법원 판단의 재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과 애경산업 관계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가 폐 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이 같은 사실을 언급하면서 “법원이 현재까지 CMIT/MIT 노출과 폐 질환의 관련성을 나타낼 만한 과학적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며 “CMIT/MIT 생물 분포와 독성에 대한 본 연구에서 얻은 결과를 고려할 때 그 결론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습기살균제 관련 소송은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올해 9월27일 제31차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에서 피해등급이 정해진 사람까지 총 4417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