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총파업은 끝났지만, 파업의 불씨가 된 안전운임제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부는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고, 민주노총과 화물연대 등은 앞으로도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한동안 노정 갈등 국면은 지속될 전망이다. 여야가 원만히 안전운임제 일몰 연장에 합의한다고 해도 일몰 종료를 앞두고 총파업이 재연될 가능성이 큰 데다 정부가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개혁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어 현 정부 임기 내내 대치 구도가 풀리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11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화물연대와 상위 노조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파업 종료와 관계없이 안전운임제 영구화와 품목 확대 등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전날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는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안전운임제 사수, 윤석열정부 규탄 등을 주장하는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안전운임제의 효과와 제도 운영계획 등을 검토한 뒤 지속가능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3년간 안전운임제를 시행한 결과, 원래 제도 도입 목적이었던 교통안전 분야의 개선 효과는 불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국토부에 따르면 견인형 화물차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제도 시행 이전인 2019년 21명에서 지난해 30명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사고 건수는 690건에서 745건으로 증가했다. 화물차주의 월평균 순수입은 컨테이너와 시멘트 화물차주 각각 73만원, 123만원씩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여당은 앞서 화물연대 총파업 직전 파업 철회를 전제조건으로 안전운임제 3년 일몰 연장을 협상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물연대가 이를 거부한 이상 안전운임제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결국 정부와 화물연대 간 입장 차가 총파업 이전보다 더욱 벌어진 셈이다.
국회에서도 여야 간 합의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불법파업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 관철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통령실은 불법파업으로 인해 천문학적 피해가 발생한 만큼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민주노총과 화물연대의 불법파업과 같은 반국가 행위에 강경한 대응과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지난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을 담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야당 단독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본회의 처리를 거부하고 있고, 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와 노동계는 앞으로도 강대강 대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공기업 등을 중심으로 이번 총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소송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민간기업들이 화물연대에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정부가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국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추산한 이번 총파업 누적 피해액은 약 4조1000억원에 달한다. 경찰은 파업 과정에서 발생한 화물연대 노조원의 운송 방해나 폭력 행사 등의 불법행위에 대해 엄정 대응할 방침이고, 국토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업무개시명령 미이행자에 대한 행정처분 등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맞서 화물연대는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취소소송과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제기했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에도 서한을 보내 개입을 요청했다. 화물연대는 조만간 정부의 업무개시명령과 공정위 조사 등을 ILO에 정식 제소할 예정이다.
주 52시간제를 비롯한 임금체계 개편,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등 윤석열정부의 향후 노동개혁 과제 추진 과정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원칙 대응으로 이번 파업 철회를 이끌어낸 만큼 나머지 개혁 과제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공산이 크다. 민주노총이 당초 예고했던 제2차 총파업·총력투쟁대회를 취소하는 등 숨 고르기에 들어갔고, 최근 들어 파업 투쟁에 대한 국민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은 만큼 정부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