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압사 참사’ 생존자인 고등학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이후 심리치료를 받는 등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애썼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 참사 생존자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와 관심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14일 마포경찰서 등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12일 오후 11시40분쯤 서울 마포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고교생 A군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경찰은 30분 전인 오후 11시10분쯤 A군 어머니로부터 실종 신고를 받고 일대를 수색 중이었다. 현장 감식 결과 범죄 혐의점은 없었으며,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휴대전화에 ‘곧 친구들을 보러 가겠다’는 메모와 ‘엄마아빠에게 미안하다, 나를 잊지 말고 꼭 기억해 달라’는 내용의 동영상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A군은 지난 10월29일 이태원에 친구 2명과 함께 갔다가 이들을 떠나보냈다. 유족에 따르면 A군은 사고 당시 현장에서 의식을 잃었다가 누군가 얼굴에 물을 뿌려 정신을 차렸다. 심하게 다쳐 위독한 상태까지 갔지만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뒤 조금씩 일상으로 회복 중이었다고 한다. A군은 참사 이후 교내 심리상담과 함께 매주 두 차례 정신과 상담치료도 받아왔다. 그러나 몇 차례 교내 심리상담을 받았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A군은 보건복지부가 심리 지원을 위해 파악했던 유가족 및 부상자 명단에도 포함돼 있었지만, 복지부로부터 심리상담 등의 지원은 따로 받지 않았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사자는 연락이 잘 안 됐고, 부모님과 연락이 됐었는데 당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필요할 경우 연락을 하겠다고 해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생존자들이 참사 트라우마로 고통받을 뿐 아니라 죄책감까지 느껴 자살 고위험군이 될 수 있기에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근처 이태원 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하고 오후부터 시민 조문을 받았다. 시민분향소에는 참사 희생자 158명 중 유족 동의를 얻은 희생자 76명의 영정과 위패가 놓였고, 유가족협의회에 참여하지 않거나 동의하지 않은 나머지 희생자들은 꽃과 사진 등으로 영정과 위패를 대신했다. 일부 유가족은 영정을 앞에 두고 오열하는 모습도 보였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정부의 지침하에 설치된 합동분향소는 유가족의 의사는 확인하지 않은 채 영정도, 위패도 두지 않고 추모 시민을 맞았다”며 “정부가 사태 축소와 책임 회피 의도가 뻔히 보이는 ‘사고 사망자’ 현수막을 걸어 유가족의 찢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고 분노했다. 이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작금의 현실 앞에 이제라도 희생자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추모와 애도를 시작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참사 49일째가 되는 오는 16일 시민추모제를 열 예정이다.
유가족협의회는 지난 10일 참사 43일 만에 서울 중구에서 창립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활동을 시작했다. 협의회엔 희생자 97명의 유가족 170명이 참여하고 있다. 유가족협의회는 △진실 규명을 위한 행정 역할 촉구 △정쟁을 배제한 철저한 국정조사와 성역 없는 수사 등 모든 수단을 통한 진실 규명 △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참사 유가족들을 위한 소통 공간 및 희생자 추모 공간 마련 △2차 가해에 대한 단호한 대처 등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