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극복 DNA 깨워… 흑토끼처럼 ‘희망점프’ [2023 신년특집 - 새날을 여는 사람들]

대한항공 정비안전보건팀 최성민씨
“여행객들 기다리며 3년간 관리한 항공기 2023년은 힘껏 비상하길”

‘희망일지’ 다시쓰는 청년들
“처한 상황은 달라도 세상 모든 청년들이 존중받는 사회 오길”

포항제철 EIC기술부 손병락 명장
“글로벌 경기침체 녹록하지 않지만 최선 다해 이길 것”

서울·경기 재래시장 소상공인들
“코로나에 ‘3高’ 악재… 지원정책 많이 나와 상인들 웃는 날 오길”
코로나19 대유행에 이은 경기둔화로 우리 사회가 위축됐지만 중후장대 산업에 몸담은 사람부터 소상공인, 청년까지 새해를 맞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보다 더 나은 한 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여전히 경제 전망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새해는 코로나19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행객들이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을 찾았을 때 안전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대한항공 정비안전보건팀의 최성민 씨.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유난히 혹독한 위기를 겪은 항공업계에 올해는 긴 터널의 끝에 희망이 보이는 해다. 대한항공 정비본부 정비안전보건팀의 최성민 대리는 무엇보다 예전처럼 아무 제약 없이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냈다.

 

최 대리는 “코로나19 대유행 초반에는 전염병 사스, 메르스처럼 시간이 지나면 곧 정상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예상과 달리 장기화하면서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시기 대한항공은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해서 운영하는 등의 자구책으로 위기를 넘겼다. 승무원 등의 직군은 순환휴업을 하기도 했지만 최 대리가 속한 정비본부는 거의 휴업 없이 업무를 이어오며 언제든 항공기가 날 수 있도록 대비해왔다. 특히 항공기를 점검·정비하는 격납고 중 서울 김포와 인천 격납고는 밤낮없이 24시간 운영된다.

그는 입사 후 현장에서 보잉737 정비를 맡다가 현재 정비안전보건팀에서 산업안전보건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안전보건 관련 법령에 따라 회사 정책을 제시하고 효율적으로 관리방안을 모색해 임직원들이 다치지 않도록 예방하고 정비사들이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수시로 격납고 현장에서 안전수칙이 제대로 이행되는지도 점검한다. 최 대리는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듯이 새해에는 힘차게 날아오르는 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산업안전 여건의 변화에 따라 대비를 잘 해서 고객도 안전하고 직원도 안전한 대한항공이 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진이 씨.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을 돕는 캠페이너로 활동하는 허진이(28)씨에게 지난해는 만감이 교차한 한 해였다. 자립준비청년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있었지만, 긍정적인 변화도 생겼다. 자립준비청년이 받는 자립수당은 월 35만원에서 올해부터 월 40만원으로 늘어난다. 보호종료 시 받는 자립정착금도 1000만원으로 확대된다. 허씨는 “이번엔 지나가는 이슈로 끝나지 않고 미디어와 대중의 깊은 관심을 받았다”며 “나아지고는 있지만 이런 지원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청년이 많다. 청년들이 외롭게 떠나는 일이 없게 올해도 계속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송혜교 씨.

10년 전 학교를 나와 홀로서기를 택했던 송혜교(25)씨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향한 편견을 없애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 송씨는 지난해 8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열다섯, 그래도 자퇴하겠습니다’)을 출간하고, 홈스쿨링생활백서 대표로 청소년과 교육 관련 정책에 조언도 하고 있다. 그는 “‘학교 밖’을 잘 모르고 나오는 청소년이 많고, 이들을 ‘비행’의 범주로 묶어 보는 시선도 여전하다”며 “더 많은 청소년에게 도움이 될 거란 희망을 갖고 올해 새 책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차종관 씨.

취업준비생 차종관(28)씨의 새해 소원은 ‘물난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 8월 수도권을 덮친 기록적인 폭우 참사에 차씨의 반지하 자취방이 물에 잠겼다. 집을 수리하는 한 달 동안은 모텔방을 전전하며 지냈다. 차씨 역시 ‘반지하는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지만, 지상층 자취방을 구할 수 있는 돈을 모을 때까지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차씨는 그래도 자연재해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이 좀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을 가져본다. 그는 “또 난리가 난다면 이번엔 살림살이라도 건지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포항제철 EIC기술부 손병락 명장.

포스코 포항제철소 EIC기술부에서 근무하는 손병락 명장의 새해 첫날 일과는 평소와 다름이 없다.

 

포스코에서 근무하는 동안 수많은 일을 겪었지만 유독 지난해는 쉽지 않은 한 해였다고 토로했다. 손 명장은 “이제 어려운 고비는 넘겼고, 결승점이 보이는 것 같다”며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통신·인터넷도 안 되고 화장실과 먹을 물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서로 격려하며 하나씩 만들어간 동료, 후배 직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 여러 위기가 함께 찾아왔지만, 비싼 값을 치르고 얻은 것도 있다. 구성원 모두 힘을 합치면 못 이룰 일도 없다는 교훈도 얻었다”고 했다.

 

철강업계의 전망은 올해도 밝지는 않다. 기준금리 인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여파로 글로벌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철강 수요가 줄어든 반면 재고는 늘고 있어서다. 손 명장은 “세계 철강경기는 한동안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야 할 수도 있다”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임직원과 관련 업계 전체가 경쟁력 회복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손 명장은 “올해는 포항제철소 1기 종합준공 50년이 되는 해”라며 “저와 주변 동료·후배들 모두 먼 훗날 이번 위기 극복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했으면 하는 게 소박한 새해 소망”이라고 전했다.

서울 강동구 둔촌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박명자 씨.

코로나19에 이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중고’를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은 “새해에는 부디 올해보다 장사가 잘 됐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강동구 둔촌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박명자씨 부부는 1월 1일 새해 첫날에도 평소처럼 이른 새벽에 가게로 나섰다. 구정만큼은 아니지만 신정에도 떡국을 끓이기 위해 떡집을 찾는 손님이 많아서다. 가게 문을 열기 전에 그날 판매할 떡을 미리 준비하려면 오전 5시30분에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30년 떡집 경력’의 박씨는 이곳 둔촌시장에서만 벌써 스물네 번째 신정을 맞이한다. 박씨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손님이 예년보다 줄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식자재값 상승으로 떡에 들어가는 재료비가 일제히 껑충 뛰었다. 박씨는 새해 소망에 대해 “경기가 좋아져서 장사가 잘됐으면 좋겠다”며 “우리 시장의 많은 사람이 모두 웃을 수 있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고 기원했다.

 

의정부 제일시장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이상백씨는 “다들 내년 한 해가 녹록지 않을 거라고 예상한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고 새해를 준비해야 한다. 모든 분이 희망이 가득한 내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새해 소망을 빌었다. 그는 “새해에는 이런 소상공인들을 지원할 많은 정책이 나오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