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많이 말할수록 위기에 대비할 수 있다.”
‘시카고학파’ 경제학자 출신이자 21대 국회 내 대표적 경제통인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말하는 ‘위기론’이다.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우리 경제를 강타했던 대표적 경제 위기 때 ‘조기 경보’가 울리지 않아 피해를 더욱 키웠다는 것이다. 경제 불황 터널의 끝은 내년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종전과 함께 찾아올 ‘재세계화’에 대비해야 경제 회복의 기회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윤 의원 판단이다.
인터뷰는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금의 우리 경제, 한 마디로 평가한다면?
“내우외환, 사면초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금씩 나아지다가 코로나19가 오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다. 경제가 제자리를 찾기도 전에 악재가 반복해 터지고 있다. 걱정이 많이 된다. 또 무슨 일이 터질지도 모르잖나. 더군다나 엉터리 같은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이론을 우리 경제에 실현한다며 스스로 쇼크를 만들기도 했다.”
―소주성이 왜 문제인지 설명해 달라.
“석유 가격이 갑자기 올라 오일쇼크가 왔듯 임금을 인위적으로 갑자기 올려 임금 쇼크를 일으켰다. 임금이 오르면 내수가 좋아진다는 이론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일자리들이 사라졌다. 식당에 가면 종업원을 부르기 어려워졌다. 줄이 길어서 보면, 먹고 나간 테이블 치울 사람이 없어졌다. 노동시장에 충격을 줬고, 생산비용 상승으로 이어졌다. 임금 쇼크가 2년 동안 지속했는데,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왔다. 우리 경제가 더욱 힘들었던 이유다.”
―정책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나니 섣불리 소주성을 실패로 단정해선 안 된단 주장이 있던데?
“소주성은 맹목적인 임금 인상을 가능하게 만든 논리였다. 그걸 통해 경제가 잘될 거란 막연한 기대를 심었다. 경제학 원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문재인정부는 검증되지 않은 것을 1번 아젠다로 삼았다. 2020년 국회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 정세균 국무총리, 민주당 이낙연 대표 연설을 들었다. 연설문 20~30쪽에 소주성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서 국정감사 때 ‘집 나간 소주성 찾는다’고 했더니 피감기관 증인이 ‘정신은 살아있다’더라. ‘소주성이 무슨 독립투사냐’고 되묻기도 했다. 자신들도 결국 2년 해보니 아니었던 것이다. 정책에 대해 평가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체 슬그머니 언급하지 않기 시작하더라. 스스로 꼬리를 내렸다.”
―지금 경제 상황을 ‘퍼팩트 스톰’ 위기라고들 평가한다. 전망은?
“IMF 외환위기는 뼈아프고 너무도 고통스러운 위기였다. 하지만 그때 위기론은 거의 없었다. 위기론 없이 위기가 오면 무섭더라. 위기론이 팽배한 와중에는 위기가 약하게 오거나 안 올 수도 있다. 그러니 퍼팩트 스톰 이야기를 많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위기란 이야기가 거의 없다가 2008년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완전히 초토화되는 식이었다. 그때 ‘경제가 이렇게 급속히 나빠질 수도 있구나’라고 느꼈다. 위기를 많이 말할수록, 완전히 고꾸라지는 위기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복합경제위기에 맞서 입법기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책은?
“법인세를 낮추고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을 유예하는 등 단기적 조치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규제 완화, 기업 친화적이고 일자리 창출에 초점을 맞춘 정책 마련을 끊임없이 지속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당장 긴급하게 터진 것부터 빨리 해결해야 한다. 시급성을 요하는 정책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국감도 그렇더라. 6개월 전에 터진 건 이슈가 안 되고, 국감 때 됐을 때 터진 이슈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원래대로라면 지난 1년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법인세 인하, 재정구조조정에 더해 중장기적 과제도 계속 발굴해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문제는 중장기 과제는 인기가 없고, 당장 단기적인 것만 관심을 끈다.”
―민주당은 법인세 인하를 부자 감세라고 하던데?
“법인이 부자인가? 법인 안에는 직원도 임원도 오너도 있다. 법인세 감세를 부자 감세라고 하긴 어렵다. 법인세 인하로 기업 부담을 줄이면 일자리를 만들고, 납품가를 쳐줄 수 있고, 물가도 안 올릴 수 있고, 특정 사람에게 이익이 가는 게 아니라 골고루 영향이 퍼져나간다. 외국 기업에 ‘들어와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라’는 신호탄도 된다. 실리적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명분을 좋아한다. 간단히 구호 만들고, 법인세 하면 이재용 삼성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을 생각나게 한다. 법인세 감세는 마치 그 두 사람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프레임을 짠다. 그건 아니다. 법인세 인하가 갖는 긍정적 효과를 실리적으로 본다면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좋은 정책이라고 본다.”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응은?
“사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공약을 입법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하는데 여소야대로 인해 그러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여러 대응책이 있겠고, 중장기적 공약사항을 잘 추려서 최대한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단기적 이슈에 매몰돼 장기적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를 대표하는 가상자산 전문가로서, 최근의 코인시장 불안정을 진단해달라.
“기본적으로 이 시장이 제도권 밖에서 자라났고 역사도 짧다. 그 두 가지 자체가 불안함을 내포하고 있다. 완벽하게 법과 제도로 정비된 상태에서 시작됐으면 덜 불안했을 것이다. 또한 가상자산의 경제 내 역할에 대해 아직도 많은 논쟁이 있다. 기본적 가치나 역할에 대한 합의가 없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폭락하고, 좋아지면 폭등한다. 호재도 많고 악재도 많다. 시장이 왔다 갔다 하니까 불안함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중앙은행 돈과 가상자산이 공존 가능한가?
“가상자산은 ‘돈’으로 태어나서 시간이 지나니 ‘자산’이 됐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 끝은 저도 잘 모르겠다. 가격이 급등, 급락하니 화폐로 쓸 수 없게 됐다. 처음 생각대로 안 됐다면 없애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나온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수많은 참가자가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며 새 모델을 만들고 노력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대체불가능토큰(NFT)이다. 이런 노력이 지속되면 새로운 먹거리 시장이 창출될 여지가 있지 않냐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돈’에서 ‘자산’이 되는 과정에서 파생물, 부산물 혁신이 나오니까 민간이 혁신을 주도하고 정부와 제도권에서 뒷받침하는 민관협력·협업을 하면 좋겠다. ‘박상기의 난’ 식으로 접근하진 말자는 생각이다.”
―내년도 경제 전망은?
“영원히 계속될 거로 보이는 것 같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내년엔 반드시 종식될 거라 생각한다. 전쟁 이후 세계는 달라질 것이다. 공급망 쇼크가 줄고, 에너지 쇼크도 줄 것이다. 급격한 형태의 ‘재세계화’가 일어날 것이다. 미·중 갈등은 상시화할 것으로 본다. 재세계화의 시대가 오면 우리가 여러 가지 챙길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다. 경제도 안정되고, 금리도 안정되고, 물가 상승도 완화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재건 관련해 여러 가지 시장이 열린다거나, 디지털 산업 육성이 일어난다거나 할 텐데, 그때를 대비하면 좋겠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