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들의 소울푸드 물곰국/울진대게 먹을까 참문어 먹을까/23∼25일 죽변항수산물축제가 펼쳐져/ 활어 맨손잡기 등 즐길거리 풍성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국물에 풍덩 빠진 물렁물렁한 뽀얀 생선살. 한 수저 떠 입안으로 밀어 넣자 씹을 것도 없이 식도를 타고 쑥 미끄러져 내려간다. 칼칼하고 시원한 김칫국물과 부드럽고 뽀얀 속살이 밤새 알코올에 시달린 위를 어루만져주니 이보다 더 끝내주는 해장음식이 또 있을까. 날이 추워질수록 맛이 좋아지는 물곰국 먹으러 울진으로 달려간다.
◆술꾼들의 소울푸드 물곰국
동이 터오는 이른 아침 경북 울진군 죽변면 죽변항으로 들어서자 활기가 넘친다. 만선으로 돌아온 어부들이 밤샘 작업에도 힘든 표정 하나 없이 밝게 웃으며 울진대게를 내리는 중이다. 죽변 수산물 시장은 더 소란스럽다. 고객을 부르는 상인들과 값을 흥정하는 손님의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오징어, 해삼, 멍게,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가리비, 도다리, 문어, 전복, 대방어 등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난다.
죽변항은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저렴한 가격에 활어회와 어패류를 구입할 수 있어 울진을 찾는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여러 생선 중에 아주 못생긴 물고기 한 마리가 시선을 잡아끈다. 바로 술꾼들의 소울푸드이자 미식가들도 엄지를 치켜세우는 물곰. 그래 오늘 해장은 너로 정했다. 맛집으로 소문난 죽변우성식당 앞에선 주인장이 막 수조에서 건져 올린 물곰(꼼치)을 손질하느라 손놀림이 바쁘다. 머리를 잡고 들어 올리자 몸길이 60∼70cm 되는 아주 큰 놈으로 젤리 같은 연한 붉은 피부 너머로 투명한 속살이 다 들여다보인다. 물곰국은 사실 특별할 것도 없다. 칼칼한 김치를 숭숭 썰어 넣은 뜨끈한 국물과 뽀얀 물곰 속살이 전부다. 하지만 전날 과음해서 입이 깔깔하고 속이 더부룩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 씹을 것도 없으니 후루룩 한 그릇 들이켜고 나니 쓰린 속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순식간에 꼬인 속이 풀어지는 기분이다. 뼈에 달린 살도 쉽게 쪽쪽 빨아먹을 수 있어 버릴 게 없다.
살이 흐물흐물한 물곰은 100% 자연산이고 냉동보관이 어려워 당일 잡아 신선하게 요리하니 맛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물곰은 부르는 이름이 너무 많아 헷갈린다. 동해에서는 물곰 또는 곰치, 남해에서는 물미거지 또는 물메기, 서해에서는 잠뱅이 또는 물텀벙이라고 부른다. 뭐가 맞을까. 물곰은 표준어가 아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쏨뱅이목 꼼치과에 미거지, 꼼치, 물메기가 있으며 동해에서는 미거지와 꼼치가 모두 잡히고 남해와 서남해안에서는 꼼치가 주로 잡힌다. 수협 위판장에서는 두 어종을 구분해서 경매하지만 수산시장, 특히 음식점에선 둘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둘 중 미거지가 조금 고급 어종으로 치지만 생김새도 거의 비슷하고 맛도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동해에서 물곰국을 주문하면 미거지일 수도, 꼼치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굳이 구분한다면 미거지가 몸길이 40m이고 꼼치는 60cm로 좀 크다. 물메기와 꼼치도 서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꼼치가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물메기가 꼼치로 둔갑하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꼭 알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많은 식당이 메뉴판에 물곰국과 곰치국을 혼용해서 쓰고 있는데 둘은 전혀 다르다. 곰치는 뱀장어과 곰치과에 속하며 장어처럼 길고 몸두께가 두꺼워 생김새가 확연하게 차이 난다. 이빨이 날카롭고 포악한 곰치는 아열대 바다의 바위틈에서 살며 물고기를 사냥한다. 따라서 꼼치국이 정확한 표현. 지금은 별미로 소문나 귀한 몸이 됐지만 예전에는 못생긴 데다 흐물흐물해 그물을 얽히게 만들었기에 어부들은 잡히자마자 물에 “텀벙” 던져 버렸단다. 그래서 ‘물텅벙이’라는 재미난 별칭도 얻었다. 어부들이 조업으로 바빠서 밥을 먹을 시간이 없다 보니 물곰과 김치를 함께 끓여 밥을 말아 먹으면서 지금의 물곰국이 탄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약전도 한국 최초의 어류생태서인 ‘자산어보’에서 ‘살이 아주 연하고 맛이 싱거우며 곧잘 술병을 고친다’고 했으니 예로부터 물곰국은 ‘해장의 왕’으로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울진대게 먹을까 참문어 먹을까
12월은 울진이 더욱 맛있어지는 시기다. 오는 23∼25일 3일 동안 푸른 동해의 맛과 향을 가득 담은 죽변항수산물축제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죽변항은 북쪽으로 강원도 삼척시와 인접하고 울릉·독도와 최단거리에 있는 울진군의 북쪽 관문이자, 동해안 최고의 어업전진기지다. 축제 기간 동안 청정해역 울진에서 잡아 올린 각종 수산물을 만날 수 있다. 수산물 및 건어물 판매장터와 활어 맨손잡기, 요트 승선체험, 수산물레크리에이션, 죽변항 수산물 즉석경매 등 다채로운 행사로 꾸며진다. 특히 겨울철 별미인 대방어 해체 쇼와 시식체험도 볼거리다. 출항하는 죽변항의 어선을 표현하는 조타 돌리기 개막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축하공연과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울진 미식 여행에서 대게와 붉은대게를 빼놓을 수 없다. 후포항 왕돌회수산에서 울진대게를 주문하니 15분 만에 찜통에 쪄낸 대게가 푸짐하게 상에 오른다. 다리를 부러뜨려 살짝 당기면 하얀 속살이 쏙 빠져 나오며 입안이 울진바다의 향으로 가득 찬다. 게 뚜껑에 뜨끈뜨끈한 밥을 비벼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임금 수라상에 오르던 울진대게는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제철이지만 음력설에 가까이 갈수록 살이 통통하게 오른다.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는 고려시대부터 대게가 울진의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고 전한다. 또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1539~1609)도 이곳으로 귀양 왔다가 대게가 많다고 해서 ‘해포(蟹浦)’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지금도 울진은 대게 생산량 전국 1위인 대게 원조마을로 대게 어획량은 죽변항과 남쪽 후포항이 쌍벽을 이룬다. 심해에서 잡히는 붉은대게는 껍질이 단단하고 짠맛이 강해 대게에 비해 값이 저렴하지만 입맛을 살려주는 별미로 대접받는다.
참문어도 울진의 별미. 주로 갯바위 틈, 바위 구멍에 서식하며 육질이 연하고 쫄깃쫄깃한 맛이 일품이며 타우린 성분과 필수아미노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울진 앞바다에는 일명 ‘짬’이라는 갯바위가 형성돼 참문어가 많이 잡힌다. 구산항에선 5∼10분 거리 연근해에서 잡는 신선한 참문어를 사시사철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