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당분간 5%대 물가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물가 오름세가 점차 꺾이더라도 그 속도나 폭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시사한 것이다.
한은은 20일 발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에서 “소비자물가는 당분간 5% 내외의 상승률을 이어가겠지만 석유류 가격 오름폭이 축소되고 국내외 경기 하방 압력도 커지면서 오름세가 점차 둔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다만 둔화 속도와 관련해서는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한은은 유가와 환율 흐름, 전기료 등 공공요금 인상 정도, 국내외 경기둔화 정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봤다.
올해 1∼1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작년 동기 대비)은 5.1%를 기록하면서 물가안정목표(2%)를 크게 웃돌았다. 연간 기준으로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수준(4.7%)을 넘어 1998년(7.5%) 이후 가장 높을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7∼11월)만 놓고 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7%로, 1998년 하반기(6.5%)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물가 오름세 둔화 속도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인 만큼 앞으로 발표되는 데이터를 통해 그간의 정책이 국내 경기 둔화 속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주요국 정책금리 변화도 함께 고려하면서 정교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금리 상승으로 인한 부동산 가격 조정, 이에 따른 금융 안정 저하 가능성, 우리 경제 각 부문에 미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 등에 대해서도 각별히 살펴보겠다고 설명했다.
앞서 3.50%로 예상됐던 이번 금리 인상기 최종금리 수준에 대해서는 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다수의 금통위원이 3.50%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는 시장과 소통을 위한 것이었지 정책 약속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면서 “경제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지난달 대다수 금통위원은 물가 상승세가 중장기적으로 목표치(2%)로 수렴한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기 전에는 (금리 인하)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라고 했다. 현재 한국 기준금리는 3.25%로 다음달 금통위에서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만 밟아도 3.50%가 된다.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지고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빨리 둔화할 경우 추가 금리 인상 횟수나 인상 폭이 바뀔 수도 있다. 이 총재는 “너무 늦게 대응하면 경기침체를 악화할 가능성이 있고 반면 너무 일찍 대응하면 ‘스톱 앤 고(stop-and-go)’라는 말처럼 통화정책의 신뢰성을 상실한다”며 “경기, 외환, 고용 등 여러 가지 거시경제 변수를 파악하고 있고 지난달 발표한 전망치에 변화가 있어 1월에 전망치를 다시 점검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