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도산 공포’ 불어닥친 기업들…역대급 고용 한파 찾아오나

500대 기업 중 200곳 분석 결과
3분기 가동률 78.4%… 2.1%P ↓
코로나 유행 첫해 比 1%P 낮아
부동산 침체… 건설업 큰 폭 하락
2023년 역대급 고용 한파 우려도

새해를 앞두고 각종 경제지표가 극도로 악화하며 한국 경제에 전방위적인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다. 경기침체 여파로 국내 대기업의 올해 3분기 가동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이던 1년 전보다 2%포인트 이상 하락하며 80% 아래로 뚝 떨어졌다. 건설업계는 가파른 금리 인상에 분양경기 침체, 레고랜드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화 우려까지 겹치며 줄도산 공포에 떨고 있다. 일부 국내 기업들은 업황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벌써 인력 감축 작업, 경비 절감 등 ‘마른 수건 쥐어짜기’에 들어갔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1960년 이후 최초로 1%대에 머물 것이란 금융당국의 전망 속에 새해 역대 최고 수준의 고용 한파가 몰려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의 한 아파트 재건축 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는 20일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가동률(생산계획 대비 실제 생산실적)을 공시한 200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의 올해 3분기 평균 가동률이 78.4%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동기(80.5%)와 비교해 2.1%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코로나19 유행 첫해인 2020년 3분기(79.4%)보다도 1%포인트 낮다.

 

기업들의 설비 투자로 생산능력은 확대됐지만, 글로벌 경기침체로 생산실적은 그에 미치지 못하면서 가동률이 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건설자재와 조선·기계설비 업종의 가동률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건설자재 업종 가동률은 차갑게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 침체를 반영하듯 올해 3분기 70.5%로 지난해 3분기(77.9%)보다 7.4%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조선·기계설비 업종의 가동률도 7.4%포인트 하락했다. 이어 에너지(-6.4%포인트), 석유화학(-5.4%포인트), 유통(-3.2%포인트), 철강(-2.5%포인트), 정보기술(IT)·전기전자(-2.2%포인트) 등 순이었다. 전체 14개 업종 중 가동률이 1년 전보다 상승한 곳은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2.5%포인트), 제약(0.8%포인트)뿐이었다.

 

건설업계 침체는 줄도산 조짐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종합건설업체 중 5곳이 최종 부도 처리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9월 충남권 6위 종합건설업체인 우석건설이 부도가 난 데 이어 경남 창원시 소재 중견 건설업체인 동원건설산업도 만기일까지 은행어음을 막지 못하면서 지난달 말 부도를 맞았다. 올해 전국 아파트 평균 청약경쟁률은 7.7대 1로, 지난해(19.8대 1)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분양경기 자체가 좋지 않은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여파로 철근·콘크리트 등 건설용 자재가격은 급등한 상황이다. 여기에 지난 9월 강원도가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사업 당시 채무보증을 섰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갚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가 건설사 자금난의 본격적인 도화선이 됐다.

강원도가 추후 회생신청 철회 방침을 밝혔지만, 채권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으면서 여전히 부동산 분야로 신규 자금이 유입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당장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전사적으로 불필요한 경비 절감을 지시하는 등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삼성전자는 15∼16일 디바이스경험(DX) 부문 글로벌 전략회의를 연 데 이어 오는 22일에는 반도체 등 부품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고 내년 위기 대응책을 논의한다. SK하이닉스는 10조원대 후반으로 예상되는 올해 투자액 대비 내년 투자규모를 50% 이상 줄일 계획이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연초 계획 대비 1조원 이상의 시설투자비를 줄인 데 이어 재무건전성이 개선되기 전까지는 필수 경상 투자 외에 투자·운영 비용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LG디스플레이는 사업구조 재편에 따른 인력운용 효율화 방침에 따라 일부 인원을 계열사에 전환 배치하기로 한 데 더해 생산직 직원 대상으로 3∼7개월씩 한시적으로 자율 휴직을 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유통가, 금융권 등이 인력 감축과 비용 절감에 나서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2023년에 역대급 고용 한파가 몰려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사진은 20일 서울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는 구직자들. 연합뉴스

국내 금융권과 유통업계에는 이미 구조조정 바람이 일고 있다. 올해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만 거의 2400명이 희망퇴직 방식으로 직장을 떠나게 될 전망이다. NH농협은행의 경우 만 40세(1982년생) 직원마저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됐다. 롯데면세점은 코로나19로 인한 사업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2020년에도 한 차례 희망퇴직을 실시했던 롯데하이마트는 가전 시장 침체에 따른 실적 부진을 이기지 못하고 최근 또 희망퇴직 대상자를 모집했다. LG전자 베스트샵을 운영하는 하이프라자도 희망자를 대상으로 근속 연차에 따라 기본급 4∼35개월 치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경기 불황은 내년 고용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사람인 HR연구소가 최근 기업 39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36.7%가 채용 규모를 올해보다 축소하거나 중단할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채용을 중단 또는 축소한다는 응답은 대기업(47.8%)이 중견기업(40.6%)이나 중소기업(32.8%)보다 더 높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열린 2022년 하반기 물가설명회에서 물가 안정 목표 운영상황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물가안정 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1월에 내년 경제성장률을 1.7%로 전망했는데, 특히 상반기 경기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측한다”며 “(우리 경제가) 경제 침체로 가느냐 아니냐는 경계선에 있다”고 말했다. 강석훈 한국산업은행 회장도 이날 한국무역협회(KITA) 조찬 특강에서 “내년 경제성장률은 1960년 이후 최초로 1%대 성장률이 전망된다”면서 “내년은 한국 경제가 초(超)저성장의 늪과 경제 재도약을 통한 글로벌 중추 국가로 발전하는 갈림길에 서 있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