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대한민국은 ‘선출된 왕’ 모시는 나라. 보수정당보단 ‘왕당파’가 맞다”

고대서 ‘보수주의의 길을 묻다’ 강연서 “절대자 왕 절대 말 실수 인정하면 안 돼. 무오류 깨지는 순간부터 와르르 무너지는 게 문제” 지적
與 대표 선출 규정 변경엔 “당헌·당규 하도 엿 바꿔먹듯 한다. 개인 보고 설계하고 누구를 영구 집권하고 쫓아내기 위해 하는 것은 실패” 비판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경관에서 정치외교학과 ‘한국의신보수주의’ 주최로 열린 특별 강연 ‘보수주의의 길을 묻다’에 참석해 학생 패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22일 한국 정치구조에 대해 “대한민국은 선출된 왕을 모시는 나라기 때문에 (대통령은) 어떤 오류도 있으면 안 된다”며 “왕은 절대자여야 하고, 절대 말 실수를 인정하면 안 되고 ‘잘못 들은 거야. 여러 번 들어봐’ 이게 정확히 우리가 들어 있는 시퀀스”라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고려대에서 ‘보수주의의 길을 묻다’ 강연을 통해 “보수정당 60년 역사라고 하지만, 국민의힘에서는 뭘 하려고 하면 누가 자꾸 그걸 휘젓고 선출된 왕이 나와서 흔든다”며 “보수정치에서 위험한 지점으로, 무오류주의가 깨지는 순간부터 정권이 와르르 무너지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가 다중을 상대로 정치 평론에 나선 것은 당원권 정지 기간 ‘전국 순회’ 이후 최초다. 이날 강연의 요지는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를 포괄하는 한국 보수정치의 문제점 지적이었다. 이 전 대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강하게 결집하는 한국 보수정당의 관행을 ‘왕당파’에 비유했다.

 

그는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게 뭐가 있나. 왕이 되면 왕을 따르라는 것이고, 보수정당보다는 ‘왕당파’가 되는 게 맞는 게 있는 것 같다”며 “(당대표) 1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게, 초선의원들이 와서 ‘이런 게 잘못됐지만 초선이라 힘이 없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주류 측이 대표 선출 규정 당헌을 ‘당원 70%+여론 30%’에서 ‘당원 100%’로 바꿔가는 데 대해서도 “요즘 하도 당에서 당헌·당규를 엿 바꿔먹듯 하는데, 개인을 보고 설계하고 누구를 영구 집권하고 쫓아내기 위해 하는 것은 절대로 실패한다”고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이어 “어떻게 입시제도가 바뀌어도 들어갈 학생은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만, 맨날 임박해서 당헌·당규 바꿔대는 게 정당 안정성을 상당히 해칠 수 있다”며 “당원들은 훈련된 유권자로 당을 위해 가장 나은 선택이 뭔지 보고 투표하지 사람에 충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비주류 당권 주자 유승민 전 의원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유 전 의원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왜 이렇게 ‘1인 독재 사당’을 만들려고 하겠나. 당을 100% 장악해 1년밖에 안 남은 총선에서 윤석열의 사람을 심기 위한 것”이라며 강한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유 전 의원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는 “할 거라고 본다”고 밝혔으나 선거 지원 여부에는 “전혀 생각해본 적 없다. 전혀 고민한 게 없다”고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한편 이 전 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핵심 슬로건으로 내건 ‘자유’ 개념에 대해서도 뼈 있는 입장을 폈다. 정진석 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방송사 측에 보수 패널 섭외 문제를 제기한 일이 사례로 나왔다.

 

그는 “내 자유 보장을 위해 다른 사람의 자유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는 게 보수의 근간이 돼야 한다”며 “선거 때는 자유 자유 하면서, 오늘은 방송 패널이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한다고 한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자유를 입에 담겠지만 실천 과정에서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서도 같은 질문이 나오자 “보수 패널들이 보수정당 입장을 반영 안 해서 교체해달라는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면,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변 안 하면 국민이 의원들을 싹 갈아치울 것”이라며 “경계심을 갖고 움직여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표는 “보수가 점진적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논쟁의 과정이 많아져야 하는데, 논쟁 과정이 상실돼 있다”며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얼마나 했으면 당대표를 쫓아내려 당헌·당규를 두 번 바꾸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전 대표는 자신이 물러난 뒤 당 상황에 대해 강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지난 2년간 신문 1면을 먹은 게 보수인데, 최근에 보면 이슈를 주도하지 못하고 검찰이 주도한다”며 “최근 '3대 개혁'을 보면 정부에서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젠다 발굴을 못 하면 다음 선거에서 보수 우위 확보가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표가 어떻게 되는가가 윤석열 정부에 잘되는 것 없고, 정치적 변화야 있겠지만 정부 평가는 경제 발전, 사회 발전, 공정과 상식이 잘 지켜졌느냐다”라며 “그런데 보수가 누군가를 두들겨 패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당 중앙윤리위원회의 당원권 정지 징계와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으로 당권을 잃은 이 전 대표는 이후 정당정치에 관한 책을 쓰며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책은 다 써놨고, 결국 다음 선거를 지배할 아젠다가 뭔지 고민을 계속 했다”며 “생각을 정리해서 드러내는 것인 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