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포 100여발 쏘고도 요격 실패… 軍, 영공 대비태세 허점 [北 무인기 도발]

남한 상공 최소 7시간 머물다 복귀
조준사격 아닌 레이더 항적 향해 쏴
합참 “민가·도심 등 국민 피해 고려”
탐지 어렵고 크기 작아 대응에 한계

북한 무인기가 26일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와 서울 상공까지 침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북한이 미사일과 전투기에 이어 무인기까지 투입하는 전방위 공세를 감행하고 있지만, 군은 대응작전에 동원한 공군 경공격기가 추락하는 등의 피해를 입고도 격추에 실패했다. 크기가 2m도 채 안 되는 소형 무인기에 군의 대비태세 허점이 노출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승오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육군 소장)이 26일 서울 용산 국방부 1층 브리핑룸에서 북한 무인기 도발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요격실패한 군, 대비태세 허점 드러나

 

군은 2014년 3월 북한 무인기 침투 사건을 계기로 공군작전사령부 중앙방공통제소(MCRC)의 통제 아래 탐지·타격자산을 통합 운용하는 무인기 대응작전수행체계를 정립하고 방공훈련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26일 북한 무인기가 침범했을 때, 군은 격추에 실패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25분부터 수도권 북부지역 상공에서 북한 무인기 5대가 휴전선을 넘어 서울 북부까지 비행했다. 무인기를 포착한 군 당국은 공군 전투기와 공격헬기 등을 투입해 요격에 나섰다. 하지만 북한 무인기가 비행한 지역이 민간인 거주지라 적극적인 작전을 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합참 관계자는 “민가, 도심지 등이 있는 곳이라 비정상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 국민의 피해를 고려해서 그 지역에서 사격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26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과 관련된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은 민간인이나 주택 등이 적은 인천 교동도 일대에서 헬기 탑재 20㎜ 기관포 100여발을 쐈으나 격추에 실패했다. 대부분의 사격은 무인기를 겨냥한 조준사격이 아닌, 레이더에 포착된 항적을 향해 발사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무인기 격추가 실패한 데다 강화도 일대를 비행했던 무인기 4대도 군 탐지자산에서 소실된 뒤 항적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우리 군이 요격 작전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북한 무인기가 남한 상공에서 최소 7시간을 머물렀다는 점에서 상당한 분량의 정보를 확보했을 가능성도 크다. 군의 대응 과정에서 KA-1 경공격기 1대가 이륙하던 중 추락, 군의 대비태세에 허점이 드러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은 27일 현장 작전부대들을 방문, 작전에 대한 조치 과정을 확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오전 11시 40분쯤 강원 횡성군 횡성읍 반곡리 섬강 옆 논으로 공군 KA-1 경공격기가 추락해 군 당국이 수습하고 있다. 횡성=연합뉴스

KA-1 추락이 북한 무인기 대응작전 도중 발생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군의 전투준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월 경기 화성시 정남면 야산에 F-5E 전투기 1대가 추락했고, 4월에는 경남 사천시 제3훈련비행단에서 KT-1 훈련기 2대가 비행훈련 중 공중충돌해 추락했다. 8월에는 경기 화성시 서신면에서 F-4E 전투기 1대 추락했고, 지난달 20일에는 강원 원주 서쪽 약 20㎞ 상공에서 KF-16 전투기 1대가 추락했다. 또 지난 10월에는 강원 강릉 공군기지에서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발사한 현무-2C 탄도미사일이 발사 후 바다 쪽으로 날아가지 않고 뒤로 넘어가면서 기지 내로 낙탄, 화재가 발생했다.

 

◆북한 무인기 요격, 왜 어렵나

 

군은 오래전부터 북한의 공중위협에 대비해 강력한 방공망을 구축해왔다. 북한 소형무인기에 대해서도 30㎜ 비호 자주대공포와 공격헬기 등을 통해 요격할 수 있다 밝혀왔다. 하지만 이번 무인기 도발로 북한의 소형무인기 위협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소형무인기는 레이더 반사면적이 작고 비행고도도 다른 항공기보다 낮은데다 적외선 방출신호도 약하다. 레이더가 탐지할 수 있는 거리가 짧다. 일단 레이더에 항적과 위치가 정확하게 포착되어야 요격을 시도할 수 있는데, 탐지 자체가 쉽지 않다.

 

레이더 대신 육안으로 식별한다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크기가 작다 보니 기관총이나 미사일 등으로 사격해도 명중이 어렵다. 요격을 하기 위해 쏜 총탄이나 미사일이 지상에 낙하해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요격 시점을 고려하다가 레이더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무인기가 격추를 피하기 위해 복잡한 기동을 하는 사례도 있다.

 

반면 충분한 대비를 갖추고 방공망을 운용하면 소형무인기 요격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 7월 지중해 가스전에 접근하는 헤즈볼라 무인기 3대를 전투기와 더불어 군함에 탑재된 방공체계로 격추했다.

 

◆2014년 靑 사진 촬영·5년 前엔 인제서 추락… 北 무인기 발견 사례·기술 수준

 

북한 무인기 5대가 26일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와 남측 영공을 휘젓고 다니면서 과거 침범 사례와 함께 무인기 기술 수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날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은 2017년 6월9일 이후 5년 6개월 만이다. 당시 강원 인제군에서 추락한 채 발견된 무인기는 경북 성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기지까지 비행해 일대를 촬영한 후 북상하다가 엔진 이상으로 추락한 것으로 분석됐다. 군의 조사 결과 해당 무인기는 전체 비행시간 5시간30여분, 비행거리는 490여㎞로 파악됐다.

2016년 1월에는 경기 문산군 지역에서 북한 무인기가 MDL을 넘어왔다가 군의 경고 방송과 경고 사격을 하자 북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비무장지대(DMZ) 내 ‘목함지뢰’ 도발로 남북 간 긴장 수위가 높았던 2015년 8월에도 강원 화천군 MDL 남쪽 상공을 북한 무인기가 여러 차례 침범했다. 2014년에는 경기 파주, 강원 삼척, 서해 백령도 등에서 북한 무인기 잔해가 잇달아 발견됐다. 당시 무인기에 장착된 카메라에서는 서울 상공에서 찍은 청와대 일대 사진이 발견되면서 큰 파장이 일었다.

 

군에 따르면 북한은 무인기를 최소 300대에서 최대 1000대까지 개발해 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무인기 전력은 주로 대남 정보 파악과 감시·정찰을 목적으로 하지만, 국지도발이나 테러를 위한 활용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의 대표적인 무인기로는 중국의 D-4를 개조한 방현-Ⅰ과 방현-Ⅱ가 꼽힌다. 방현 무인기는 길이 3.6, 폭 4.8로 3㎞ 고도에서 최대 시속 160㎞로 비행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휘발유 엔진을 장착하고 낙하산을 펼치는 방식으로 착륙한다. 북한군은 러시아에서 도입한 VR-3와 프첼라-1T도 운용 중이다. 프첼라-1T는 2.5㎞ 고도에서 최고속도 180㎞로 비행이 가능하다. 다만 야간에 비행하는 능력은 갖추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2013년 미국산 스트리커(MQM-107D) 무인기를 개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인타격기를 개발했다고 선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