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보다 전투기… 尹정부, 한반도 제공권 장악에 10조 퍼붓는다 [박수찬의 軍]

한반도를 둘러싼 공군력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J-20 스텔스기 배치를 늘리면서 J-16D 전자전기 등을 전력화하고 있고, 일본도 영국·이탈리아와 차세대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할 방침이다.

 

공군 F-35A 스텔스 전투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국도 공군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는 계획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미 미사일지침을 없앤 문재인정부는 현무 계열 탄도미사일을 중심으로 미사일 전력을 강화, 전략적 억제력을 유지하는데 치중해왔다. 

 

현 정부는 공군력을 늘려 북한과 주변국의 압박에 맞서는 방식을 추구하는 모양새다. 이를 위해 10조원이 넘는 대대적인 공군력 증강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모양새다.

 

◆“필요한 것 다 사고, 모자라면 더 산다”

 

국방부는 지난달 24일 향후 5년간의 전력증강 구상을 담은 ‘2023~2027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했다.

 

5년간 331조원의 국방비가 투입되는 중기계획에는 공군 전자전기 사업이 포함됐다. 

 

전자전기는 전투기 수십 대에 해당하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체다. 레이더는 전파를 쏜 뒤 표적에 맞고 나온 반사파를 수신해 표적을 확인한다. 그런데 다른 전파가 들어오면 레이더와 컴퓨터, 통신장비 등은 먹통이 된다. 전자장비가 가동되지 않으면 전투기는 눈뜬 장님이나 마찬가지다.

 

미 공군 EC-130H 전자전기가 이륙에 앞서 활주로에서 대기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공군이 북한 방공망을 돌파하려면 전자전을 실시, 북한군 레이더 등을 마비시켜야 한다. 하지만 자체적인 전자전기가 없어 미군에 의존해야 했다. 공군이 예전부터 전자전기 4대 도입을 요청해온 이유다. 

 

이번 국방중기계획에 포함된 전자전기 사업은 2027년 이전에 본격적으로 착수, 2030년대 초반에 전력화를 목표로 추진될 예정이다. 사업비는 2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기술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단계적 방식을 채택할 전망이다. 

 

미군 EA-18G이나 중국 J-16D처럼 전투기를 개조하는 방식이 아닌, 대형 항공기에 전자전장비를 탑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산 정보수집장비를 프랑스 닷소 비즈니스 제트기에 통합한 백두 정찰기와 유사한 개념이다. 

 

다만 플랫폼은 미군 EC-130H처럼 프로펠러 수송기를 쓸 수도 있고, EC-37B처럼 비즈니스제트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C-130은 공간이 넓어 장비를 더 많이 탑재하며, 향후 임무 확장도 용이하다. 비즈니스제트기는 높은 고도에서 빠르게 비행할 수 있다. 최근에는 미군 EC-37B처럼 비즈니스제트기에 전자전장비를 탑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공군 F-15K 전투기가 정밀유도폭탄(JDAM)을 지상의 표적에 투하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전임 정부시절부터 거론됐으나 사업 착수가 지연, 공군의 속을 태우던 F-15K 성능개량 사업도 2024년부터 본격 추진된다.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28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F-15K 성능개량 사업추진기본전략안과 공중급유기 2차 사업추진기본전략안을 의결했다. 

 

2024∼2034년 3조4600억 원을 투입해 F-15K 레이더를 능동전자주사식위상배열(AESA) 레이더로 바꾸고, 반자동인 전자전 장비를 개량해 채프 투하 등을 자동으로 처리한다. 임무컴퓨터의 정보처리 능력과 메모리 용량도 확장한다. 

 

소프트웨어 등의 체계통합 및 시뮬레이더 성능개량, 후속군수지원도 총사업비에 포함됐다.

 

F-15K 성능개량 사업은 전임 정부 시절 사업비가 4조원을 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비용과다 논란을 빚었다. 내년에 사업타당성조사를 진행해서 총사업비를 정확하게 산정해야 하지만, 방추위 의결 직후 공개된 사업비는 전 정부 때보다는 줄었다.

 

방사청은 F-15K를 운용하는 다른 국가들과 공통되는 장비로 개량, ‘규모의 경제’ 효과가 발생해 비용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F-15K를 처음 도입했을 때 발생한 문제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F-15K는 첫 도입 당시 야간 저고도 침투장비인 ‘타이거 아이’를 비롯해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장비가 상당수 포함됐다. 이는 후속군수지원 비용 상승과 정비기간 연장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 

 

공군 KC-330 공중급유수송기가 활주로에 착륙해 주기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현재 미 공군은 최신형인 F-15EX를 도입하고 있고, 카타르 등도 F-15EX와 공통점이 많은 기종을 새로 구매하는 상황이다. 방사청의 언급대로라면 F-15EX의 전자장비가 F-15K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F-15EX의 임무 컴퓨터는 초당 870억 개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 임무 데이터 파일 시스템을 운용한다. 접근 중인 물체나 비행체를 포착하면 데이터베이스에서 특징을 검색해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최대 280㎞ 떨어진 표적을 탐지하는 AESA 레이더와 이글 능동/수동형 경고 및 생존성체계(EPAWSS) 전자전장비도 탑재한다. 

 

공중급유기 2차 사업추진기본전략안은 2024∼2029년 1조2000억원을 들여 공중급유기 2대를 국외 구매로 확보하는 사업이다. 2018∼2019년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 KC-330 4대를 도입한 직후 추가 구매 형태로 이뤄진다.

 

후보기종은 공군이 운용중인 KC-330의 원형인 유럽 에어버스 A330 MRTT와 미국 보잉 KC-46A다. 두 기종은 군의 요구성능을 충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330 MRTT는 공군이 도입 이후 문재인정부에서 공중급유보다 해외 긴급수송에 더 많이 사용했다. 운용 경험이 축적됐고, 별도의 후속군수지원과 훈련 체계 구축이 필요없다.

 

KC-46A는 최근 미 공군 B-52H가 루이지애나주 박스데일 공군기지에서 42시간 이상을 비행하며 서태평양에 전개했을 때 공중급유임무를 수행, 장거리 작전능력을 입증했다.

 

미국 보잉이 만든 KC-46A에 한국 공군 표식을 붙인 상상도. 보잉 제공

이외에도 항공 수송과 긴급 해외 구조 임무에 쓰일 대형수송기 3대를 7100억원을 들여 도입하는 대형수송기 2차 사업도 C-130J-30(미 록히드마틴), A400M(유럽 에어버스), C-390(브라질 엠브라에르)가 후보에 포함된 채 진행중이다. 

 

기존 E-737에 이어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추가 구매하는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은 소요를 2대에서 4대로 수정해서 진행할 예정이다. 2023~2028년 3조9400억 원을 투입해 F-35A 20대를 추가도입하는 차세대 전투기(F-X) 2차 사업도 내년부터 본격화한다.  

 

2020년대 말부터 실전배치가 이뤄질 국산 KF-21 전투기도 초도양산을 위한 준비가 2~3년 안에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예산규모가 10조원을 훌쩍 넘는 초대형 공군사업이 약 10년 동안 이뤄지는 셈이다.

 

◆‘선택과 집중’ 통한 구조조정 필요

 

공군이 사용하는 항공기들은 전자장비 비중이 높고 항공무장과 후속군수지원 등도 함께 도입하므로 도입 과정에서 수천억원~수조원의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공군이 사업 가짓수는 적은데 쓰는 돈은 정말 많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향후 정부 예산 사정이 팍팍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설 한국형 3축 체계(킬체인, 한국형미사일방어, 대량응징보복) 구축을 위해 정부가 국방예산에 ‘배려’를 해도 수조원이 넘는 공군 전력사업들이 잇따라 추가되면, 재정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공군 KC-330 공중급유수송기와 F-15K, KF-16 전투기들이 편대를 구성해 비행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와 관련해 군 소식통은 “최근까지도 공군 내부에선 ‘전력증강 사업들을 일단 확보해 놓아야 한다’는 측과 ‘지금은 전투기에 집중해야 할 때’라는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전력증강 사업은 타이밍을 놓치면 기간이 늘어나고 착수 시기도 늦어진다. 대형수송기 사업은 당초 7대를 일괄 구매하는 것이었지만, 1·2차 사업으로 나뉘면서 2014년 C-130J-30 4대 도입 이후 이제서야 3대 추가 구매가 추진되는 상황이다.

 

전력증강 사업 담당 측에서는 방추위에 사업을 상정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수밖에 없다.

 

최근 북한이 전투기와 폭격기를 동원해 휴전선 인근에서 무력시위를 했고, 대규모 공군훈련을 감행하기도 했다. F-4, F-5 노후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공군 일선부대는 첨단 전투기 소요를 최대한 빨리 충족해주기를 바라게 된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군 안팎에서 나온다. 국가예산과 국방비의 경직성이 매우 높은 상황을 감안, 문재인정부의 국방개혁 2.0에서 결정한 전력화 계획 중 지속 대상 사업과 중복 또는 중단이나 폐기 대상 사업을 추려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군 C-130J 수송기가 선회비행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부대구조가 바뀌고 전력화 사업이 시작되면 최소 십수년은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 전임 정부에서 시작된 ‘관성’을 차단해야 과도한 지출을 막을 수 있다.

 

일례로 최근 방추위에서 결정된 공중급유기 2차 사업의 경우 군은 ‘필요시 국제 평화유지 활동 지원 등 원거리 공수 임무 지원’이라고 사업 목적을 밝힌 바 있다. 현재 사용중인 KC-330도 공중급유수송기로 불린다. 이같은 성격은 현재 추진중인 대형수송기 2차 사업과 중복된다.

 

유사시 제공권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정부가 10조원이 넘는 공군 전력증강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막대한 예산지출이 요구되는 공군 전력증강 사업은 정부 차원의 면밀한 검토가 필수다. 중복 소요를 찾아내고 예산을 절감하는 방법을 만드는 ‘필터링’이 없다면, 혈세를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현명한 소비’가 요구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