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방음터널…‘공사 과정’ 경찰 수사 뒷전에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를 두고 ‘안전 불감증’이 가져온 ‘인재’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화재에 취약한 플라스틱 소재가 쓰인 방음터널에 대한 경고가 잇따랐지만, 관련 당국이 귀를 닫았기 때문이다. 발화원인 5t 폐기물 운반용 트럭에 쏠린 경찰 수사를 놓고도 안전 사각지대에 방치된 방음터널의 시공 과정을 근본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도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 화재 현장에서 지난 2022년 12월 30일 경찰과 소방, 국과수 등 관계자들이 화재 발생 당시 최초 불이 난 트럭을 감식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경기도에만 70개 방음터널…플라스틱 소재 터널 비율 ‘오리무중’

 

1일 국토교통부와 경기도 등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에선 방음터널이 ‘우후죽순’ 늘어나 현재 70개가 운영되고 있다. 절반이 넘는 41개는 산하 시·군이, 29개는 국토부에서 관리한다. 국토부가 관리하는 방음터널 가운데 14개는 민자도로에 위치한다.

 

관련 기관들은 이번 화재의 원인으로 꼽힌 플라스틱 소재 방음터널이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플라스틱 소재 방음터널 재료로는 폴리카보네이트(PC)와 폴리메타크릴산메틸(PMMA) 등이 쓰이는데 모두 열가소성 재질로 화재에 취약하다.

 

플라스틱 소재 방음터널 화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화재 취약성에 대한 경고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8월 부산 동서고가도로 방음터널에선 승용차의 불이 방화벽으로 번진 사고가 일어났다. 2020년 8월에는 수원 광교신도시에서 용인 구성구로 연결되는 하동IC 고가도로에 설치된 방음터널에서 승용차에 난 불이 번지며 터널 200m 구간을 태웠다. 당시 화재는 과천 방음터널 화재와 같은 상황이었지만, 새벽 시간에 일어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곳에 쓰인 소재가 PMMA였다. 

 

하동IC 고가차도의 화재 구간은 수원시와 용인시에 100m씩 걸쳐 있어 두 지방자치단체 간 복구 비용을 두고 갈등을 빚으며 2년 넘게 방치됐다.

지난 2022년 12월 29일 오후 1시 50분께 경기도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부근 방음터널 구간에서 화재가 발생해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과천 방음터널 화재 직후 도로 관리주체인 수원시는 불연성 강화유리로 방음터널을 재설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용인시도 화재 발생에 대비해 관내 방음터널 17개에 양방향 50m 간격으로 소화기를 비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연구기관들은 방음 자재의 화재 취약성에 관한 연구결과를 거듭 발표했으나 국토부와 지자체 등 도로관리 주체들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현재 국내에는 방음터널에 불연 소재 관련 규정은 없다. 방음터널은 일반 터널로 분류되지 않아 소방 설비 설치 의무가 없고, 시설물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진단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일종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이처럼 방치되는 동안 민자도로 구간에선 가성비가 좋다는 이유로 방음터널 소재로 PMMA가 주로 사용됐다. 한국도로공사는 2012년 PMMA의 화재 가능성을 경고했고, 감사원도 2021년 방음벽이 화염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역시 입을 모았지만 경고는 무시됐고, 지난해 7월에야 국토교통부는 관련 용역을 시작했다. 

지난 2022년 12월 30일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 화재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등 관계자들이 최초 불이 난 5t 폐기물 운반용 집게 트럭의 발화 원인과 화재 확산 경위를 파악는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뉴스1

◆ 폐기물 트럭에 쏠린 수사…경찰, 방음터널 공사 적절성 조사 뒷전에

 

관할인 경기남부경찰청은 화재 직후 수사부장과 자치경찰부장을 공동 수사본부장으로 하는 50여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편성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수사는 최초 발화원으로 지목된 화물차에 쏠려 있다. 지난달 31일 폐기물 수거업체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며 수사에 박차를 가한 상태다. 수사관 10여명을 동원한 강제수사에선 발화원인 5t 폐기물 운반용 트럭이 방음터널 안에서 불이 나게 된 원인을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경찰은 해당 업체의 안전보건일지 등 불이 난 차량과 관련한 각종 자료를 확보한 가운데 차량 노후화로 인한 화재와 정비 미비 등에 가능성을 두고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과 합동 현장 감식을 벌였고, 트럭 운전자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해 2차례 소환 조사를 했다. 트럭 운전자는 화재 초기, 알 수 없는 이유로 바닥 부분에서 화재가 났고 이후 성실하게 진화에 나섰다는 입장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 화재사고 합동감식에 들어간 지난 2022년 12월 30일 경기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에서 경찰 관계자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들이 현장감식을 하고 있다. 뉴스1

경찰 수사가 영세 폐기물 업체에 쏠리고, 방음벽 설치 과정의 적절성과 불법성 여부 등을 살펴보는 데서 멀어지면서 일각에선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시공사의 관리·감독을 받으며 방음터널 공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A전문업체 회장 B씨는 국토부 공무원과 유착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3년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업계에 따르면 B씨의 건설업체는 2016년 60억원 규모의 제2경인고속도로 안양~성남 구간 고속도로 방음터널 공사에 참여했다.

 

경찰 관계자는 “우선은 트럭 운전자에 대한 조사에 집중하겠다”며 “시공사와 도로 관리 주체에 관한 수사도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화재는 지난달 29일 오후 1시49분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을 지나던 5t 폐기물 운반용 트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면서 일어났다. 방음터널 830m 가운데 600m 구간이 전소되면서 5명이 사망하고, 41명이 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