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케이드’ 대신 ‘관계’ 우선시”… ‘과격시위’ 英기후단체의 변신?

‘우리는 그만둔다’ 성명 발표
“행동하는 게 범죄가 되는 상황
“‘공공훼손’으로부터 거리둘 것”

“우리는 새해를 맞이해 다소 논쟁적일 수 있는 결정을 내립니다. 주요 전략인 ‘공공 훼손’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합니다.”

 

영국 기후시위단체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은 2022년 12월31일 ‘우리는 그만둔다(We Quit)’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지난해 은행의 화석연료 투자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 영국 기후단체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이 한 은행 지점 유리창에 항의 문구를 써놓은 모습이다. 멸종저항 제공

멸종저항은 2018년 영국에서 시작돼 현재 세계 86개국에서 활동 중인 기후환경단체다. 각국 정부의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언, 2025년 탄소중립 달성, 시민의회를 통한 정책 추진 등을 주장해오고 있다.

 

이들이 이름을 알린 건 과격한 시위를 통해서였다. 의회 광장에 나무를 심거나 버킹엄궁 문을 가로막는 시민불복종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지하철을 막아 세우거나 비행기 이륙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호주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에 전시 중인 파블로 피카소의 명화 ‘한국에서의 학살’에 접착제를 바른 손을 붙이는 시위를 벌려 논란이 됐다.

 

멸종저항은 새해 들어 스스로 ‘공공 훼손’이라 불리는 이같은 행동 전략을 수정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들은 “목소리는 내고 행동하는 게 범죄로 규정되는 상황에서, 집단적 힘을 구축하고 인원을 늘리고 가교를 놓아 번영하는 게 급진적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영국 정부가 ‘핵심 국가 기반시설에 대한 간섭’과 ‘점거’ 등 활동에 대한 범죄 규정을 골자로 하는 공공질서법안을 마련한 데 따라 시위 전략 조정 필요성이 제기됐단 것으로 풀이된다. 

 

멸종저항은 “우리는 모든 사람이 이 작업(기후행동)에 참여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올해는 체포보다는 참여를, 바리케이드보다는 관계를 우선할 것이다. 우리가 뭉치면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지 매체는 멸종저항의 변화 시도에 대해 ‘대중의 외면’을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가디언은 이 성명을 전하면서 ‘멸종저항이 대중에게 호감보다 비호감을 사고 있다’는 취지의 한 여론조사 결과를 덧붙였다. 실제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가 지난해 3분기 영국인 1124명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멸종저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응답자는 21%, 부정 평가는 32% 수준이었다. 

 

멸종저항의 전략 수정은 오는 4월21일 런던 의사당을 둘러싸는 10만명 규모 시위 계획을 통해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이 시위의 의미에 대해 “의사당을 에워싸는 건 자물쇠, 접착제, 페인트를 내려놓는 대신, 비판적인 대중의 신념이 무시할 수 없는 순간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멸종저항의 이같은 변화가 다른 기후단체의 시위에도 영향을 미칠 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