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5일 오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엄수된 장례 미사 후 전 세계인들에 작별을 고했다. 현직 교황인 프란치스코가 장례를 주례했다.
역대 교황의 장례 미사는 수석 추기경이 집전해왔으나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2013년 스스로 물러남에 따라 현 교황이 직접 주례했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가톨릭 역사상 598년 만이었다. 현직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주례하는 일은 교회 2000년 역사상 2번째로, 1802년 비오 7세 교황이 전임 교황인 비오 6세의 장례식을 주례한 이후 처음이다. 당시는 프랑스에서 선종한 전직 교황의 장례를 3년 뒤 로마에서 다시 치른 것이라 이번과는 경우가 다르다. 장례 미사 전 사흘 동안의 일반 조문 기간에는 약 20만명이 찾아 조의를 표했다.
지난달 31일 선종한 베네딕토 16세는 간소한 장례식을 원한다는 뜻을 생전에 밝혔지만, 교황청은 현직 교황의 장례 미사와 거의 동일한 절차로 진행했다. 시신이 안치돼 있던 성베드로 대성당을 지나 성베드로 광장 야외 제단 앞에 운구된 관 위에는 성경이 펼쳐 올려졌다. 삼나무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과 베네딕토 16세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돼 간직됐다.
이번 장례 미사에는 추기경 125명, 주교 200명, 성직자 3700명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가톨릭 신도와 로마 시민 등 수만명이 운집했다. 교황청은 베네딕토 16세가 현직 교황이 아닌 점을 고려해 바티칸이 속한 이탈리아와 전임 교황의 모국인 독일 대표단만 공식 초대했다. 필리프 벨기에 국왕과 소피아 스페인 왕대비를 비롯해 전 세계 13개국 지도자가 개인 자격으로 장례 미사에 참석했다. 우리나라는 오현주 신임 주교황청 한국 대사가 정부를 대표해서 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장례 미사 강론을 통해 전임 교황에 마지막 축복을 전했다. 베네딕토 16세의 생전 마지막 말인 “아버지여, 당신의 손에 제 영혼을 맡깁니다”를 포함해 “사랑은 고통받을 준비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등 여러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그를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16세는 당대 최고의 신학자로 명성을 얻었고, 그 연장선에서 교회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려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사가 마무리된 후 다시 성베드로 대성당으로 운구된 베네딕토 16세의 관은 좁은 계단을 내려가 지하묘지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전임자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이장되기 전까지 안장돼 있던 바로 그 묘역이다. 이곳에는 역대 교황 91명이 안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