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퍼 존스가 브론즈로 맥주 캔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색을 칠해 판 위에 올려놓았다. 제목도 ‘채색된 브론즈 에일 맥주 캔’이라고 붙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술을 마실 때는 주목하지 않고 무심히 대했던 맥주 캔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원기둥 모양의 캔, 그 위에 칠해진 색채, 여러 겹의 타원형 바탕과 그 사이를 메운 글자 등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들이 어울려 만드는 조화와 균형이란 것도 우리는 생각한다. 기존의 조각 작품을 대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존스가 이 작품을 통해 노린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술이란 그렇게 멀리 있지도 않고, 그렇게 고상한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하려는 의도였다. 예술가의 개성을 앞세워 어렵고 색다른 이미지 창작에 매달리기보다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공동체적 이미지를 통해 작품을 창작하려 했다. 이른바 ‘사회 속의 미술’이다.
그래서 그는 맥주 캔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미국 국기, 표적, 숫자 등을 끌어들여 제작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럴 때, 국기나 숫자나 표적은 일상적 의미를 갖는 기호나 상징물로서 기능을 상실하고, 하나의 이미지가 되며 미술 작품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미지에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아니 애써 보려 하지 않았던 조형적 특색들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