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日 사죄 없고, 가해 기업 빠진 강제동원 해법 안 된다

한국 기업이 피해 배상금 선대납
피해자 “日 면책해주는 것” 반발
미래 위한다면 日 태도 바꾸어야

정부가 어제 일제 강제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 배상금을 대납하는 형식(제3자 대위변제)의 해법을 사실상 최종안으로 제시했다. 서민정 외교부 아·태국장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민관협의회 검토 결과 핵심은 피해자들이 제3자를 통해서도 우선 판결금을 받으셔도 된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해 7월 발족한 민관협의회 회의와 외교채널을 통한 대일협상의 결과를 토대로 정한 정부의 입장을 당국자가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최악의 한·일관계를 고려한 방안이겠지만 졸속으로 이뤄져선 안 된다. 정부안은 가해 기업은 빼고 한국 기업으로부터 자발적 후원금을 받아 피해자에게 선지급한다는 것이 골자다. 포스코가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기부한 60억원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배상과 사과가 필요하다는 여론수렴 결과를 일본에 전하고 성의 있는 호응을 촉구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일본 정부와 기업의 입장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일 것이지만 이대로라면 면책시켜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은 “외교부는 피해자들이 이토록 강력하게 반대하는 안을 신속하게 밀어붙이는 이유를 밝히라”며 반발했다. 피해자들이 수긍하지 않는 해법은 국민의 공감을 얻기도 힘들다.



윤석열정부는 출범 이후 7개월 내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매진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북한이 도발해오는 상황에서 북핵공조를 위해서라도 한·일관계 개선은 시급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정부는 양국관계 개선 속도 못지않게 과정과 내용도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피해자 측 입장이 배제된 해법은 문제 해결이 아닌 국론분열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2015년 박근혜정부 위안부 합의의 재판이 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정부는 피해자 설득에 마지막까지 최선의 노력을 해주길 바란다.

일본 역시 역사의 과오를 외면하지 말고 진심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맺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 차원의 진정 어린 사과와 가해 기업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의 배상 참여를 전향적으로 결정해야 옳다. 양국의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