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 옆으로 '씽' 반납은 아무 데나 '휙'… 골칫덩이 전동킥보드 [이슈+]

전동킥보드 관련 교통사고 매년 폭증

“일부러 사람들 불편하라는 듯 두고 가”
방치된 전동킥보드에 걸려 넘어지기도

프랑스 파리선 이용금지 시민투표도

2021년 5월3일 오후 10시50분쯤, 술에 취한 A씨는 전동킥보드를 빌렸다. 당시 A씨 혈중알코올농도는 0.108%로 면허취소 수치(0.08% 이상)를 훌쩍 넘긴 상태였다. 그는 전동킥보드를 탄 채 서울 동대문구 중랑천을 질주했다. 가로등이 설치되지 않은 곳인데다 술에 취해 인지능력이 떨어졌던 A씨는 중랑천을 걷고 있던 B(25)씨를 쳤다. B씨는 그대로 쓰러졌고 요골 골절 등 전치 18주 부상을 입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9월 서울북부지법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금고 5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술에 취한 상태로 전동킥보드를 운전하던 중 교통사고를 야기했다”며 “피해자에게 중한 상해가 발생한 점 등은 A씨에게 불리한 정상”이라고 판시했다.

 

운전면허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빌릴 수 있는 장점을 발판으로 최근 몇 년간 급격히 늘어난 전동킥보드가 골칫덩어리로 변하고 있다. 이같은 음주운전 사고는 물론 사용 후 어디든 반납이 가능하다보니 인도 등에 반납해 시민 통행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고, 인도 주행이 금지돼 있음에도 이를 어기는 운전자들이 많아서다. 프랑스 파리는 전동킥보드 대여 금지 여부를 놓고 오는 4월 주민투표까지 실시하기로 했다.

 

◆사고 폭증한 전동킥보드…“인도에서 아찔”

 

17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1년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로 인해 발생한 교통사고 건수는 1735건이다. 2017년(117건)에 비하면 1382% 폭증한 수치다. 개인형 이동장치 교통사고는 △2018년 225건 △2019년 447건 △2020년 897건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전동킥보드 사고 등으로 재판에 넘겨지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법원 판결문 인터넷 열람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최근 2년간 운행 부주의 및 음주운전으로 기소돼 유죄를 확정 받은 전동킥보드 운전자는 56명이나 된다.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수사가 진행 중인 건들을 합치면 건수는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전동킥보드 사고가 많은 건 인도 운행이 금지돼 있음에도 인도 운행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네티즌은 “오늘 조심히 일자로 걷고 있었는데 소리 없이 나타난 ‘킥라니’(킥보드+고라니의 합성어)가 팔을 스치며 광속으로 지나가는 바람에 기절하는 줄 알았다”며 “전동킥보드가 제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운전자들은 최고 속도가 시속 25㎞에 불과한 전동킥보드로 도로 운행을 하기 부담스럽다고 항변한다. 대중교통을 타기 애매한 거리를 이동할 때 전동킥보드를 종종 이용한다는 이모(31)씨는 “인도로 다니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도로로 다니면 차들이 경적을 울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푸념했다.

 

전문가들은 전동킥보드의 애매한 법적 지위부터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동킥보드는 현재 원동기장치자전거, 즉 자동차류로 분류돼 도로에서만 운행이 가능하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전동킥보드에 대한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한 뒤 전동킥보드가 자전거 전용도로를 이용해도 될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며 “(전동킥보드 이용이 늘어난 만큼) 전동킥보드 이용 규칙 등을 포괄적으로 재점검해야 할 시기”라고 제언했다.

 

◆인도 한가운데에, 횡단보도에…무분별한 반납

 

전동킥보드를 어디에나 반납할 수 있다 보니 일부 이용자들이 대교 한가운데나 횡단보도, 인도 등 무분별하게 전동킥보드를 반납하는 것도 문제다. 직장인 C(28)씨는 “최근에 인도 한가운데 주차된 전동킥보드를 봤다. 아무리 반납 위치가 자유라지만 어이가 없었다”며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는 전동킥보드가 너무 많다”고 전했다.

 

한 시민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온라인에서도 전동킥보드 주차에 대한 불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네티즌은 “길 한가운데 버리듯이 내버려두고 가는 건 좀 아니지 않느냐”며 “일부러 사람들 불편하라는 듯이 두고 간 느낌”이라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어머니께서 자전거를 타다 방치된 전동킥보드 때문에 넘어져 다치신 적이 있다”며 “그 이후 방치된 전동킥보드를 보이는 족족 이동에 방해되지 않는 곳으로 치워놓고 다닌다”고 말했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책을 고심 중이다. 제주도는 전동킥보드 무단 방치를 막기 위해 전용 주차구역을 설치하기로 했다. 제주시에 54곳, 서귀포시에 26곳을 설치하며 주차 허용구역 외에 전동킥보드를 무단 방치한 경우 견인 등의 조치도 취할 방침이다. 특히 차도와 건물 등 진출입로, 횡단보도 등에 방치한 경우에는 즉시 견인하기로 했다.

 

◆파리에선 전동킥보드 금지 투표…“금지해야”

 

전동킥보드가 애물단지로 전락하면서 해외에선 전동킥보드 이용을 아예 금지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안느 이달고 시장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르파리지앵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는 4월 2일 시민 투표를 통해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 금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달고 시장이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파리에서도 전동킥보드로 인한 사고가 빈발하고 거리 곳곳에 아무렇게나 전동킥보드가 방치됐기 때문이다. 센강에 버려진 전동킥보드도 여럿 발견됐다고 한다.

 

파리 교통 책임자인 데이비드 벨리아르 부시장은 AFP에 “전동킥보드는 방해되고 위험하다”며 “도로와 인도의 평화를 위해 금지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