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향후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할 가능성에 대비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미국 유력 싱크탱크에서 제기됐다. 미국에서 그간 외면받거나 금기시되던 한국의 핵 보유에 대한 언급이 한반도 전문가 및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포진한 싱크탱크에서 공개적으로 나온 것이라 의미가 작지 않다는 분석이다.
미국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한반도위원회는 18일(현지시간) ‘대북 정책과 확장억제 보고서’에서 “현 상황에서 미국의 전술핵을 한반도에 배치하거나 한국의 핵무기 획득을 묵인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면서도 “미래 어느 시점에 저위력 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할 가능성에 대비해 그에 필요한 준비작업과 관련한 모의(테이블톱) 계획훈련을 양국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일 국방부 신년 업무보고에서 북한의 도발 수위가 더 높아질 경우를 가정해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앞서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미국의 핵우산이나 확장억제 개념은 북한이 핵을 개발하기 전의 개념이라면서 이제는 그런 개념으로 국민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납득시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한·미 실무급에서 논의를 진행하되 재배치 시기와 무기 종류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두고, 아직 재배치를 결정한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계획훈련에는 재배치의 환경 영향 연구, 핵무기를 저장할 시설을 둘 위치 파악, 핵 안전·보안 관련 합동훈련, 주한미군 F-16 전투기의 핵 임무 수행을 위한 인증 작업, 핵무기 저장시설 건설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북한의 증가하는 핵 위협, 독자적 (핵탄두)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에 대한 미국의 미사일 방어 요격 취약성이 한국에 미국의 확장억제 신뢰성의 의문을 갖게 했다”면서 “이러한 전략적 지형 변화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북핵 문제에 대한 전통적 접근법을 재검토하고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 로드맵을 전제로 외교를 통한 조건 없는 대화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동시에 과거에 중단되거나 격하된 합동 군사훈련을 재개하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한국형 아이언돔 조기 배치, 한국의 킬 체인 능력 확보 등을 통한 제재 집행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정찰 능력 강화 등을 위한 한·미 우주 협력 확대와 북한 미사일 탐지·방어망 교란 등을 위한 미사일 전략 개발 필요성도 강조했다.
보고서 작성에는 존 햄리 CSIS 소장과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빅터 차 CSIS 한국석좌 등 한반도 전문가 및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 등 14명으로 구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