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노총 등 14곳 압수수색… 尹정부, 노동 개혁 본격화

월례비·노조전임비 등 명목
건설사들 3년간 1686억 뜯겨
현장 불법행위 2070건 신고
경찰,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건설노조 14곳 전방위 압색

이틀 연속 압수수색에 반발 심화
“대통령 사주 받은 국정원의 쇼” 강력 규탄
외교 참사 덮고 국보법 지키기 의도 주장
시민사회계도 “공안 탄압 중단” 반발 확산

윤석열정부가 건설 현장 불법행위와 전쟁을 선포했다. 경찰은 19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 산별노조를 비롯한 수도권 지역 건설노조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국토교통부도 이날 최근 2주간 전국 1489개 건설 현장 실태조사에서 월례비 강요 등 불법행위가 2070건이 신고됐다고 밝혔다. ‘노조 불법행위 근절’을 내세웠던 윤석열정부의 노동 개혁이 본격화하고 있다.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수사하는 경찰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건설 관련 노조를 압수수색한 19일 서울 금천구 한국노총 건설노조 사무실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뉴스1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이날 오전 7시부터 9시간에 걸쳐 민주노총 건설노조 사무실 5곳과 한국노총 건설산업노조 사무실 3곳, 한국연합·민주연합·건설연대·산업인노조·전국건설노조연합·전국연합현장 등 소규모 노조까지 포함해 총 14곳의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경찰은 이날 휴대전화 22개를 포함한 전자정보 약 1만7000점 등을 확보했다.

 

경찰이 동시다발 압수수색 칼을 빼 든 건 채용 강요, 폭행 협박·위협 등 건설 현장 건설노조의 불법행위가 매우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동안 건설 현장에서는 건설노조가 소속 노조원에 대한 채용을 압박하고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공사를 방해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불법행위가 끊이지 않았다. 정부가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을 기점으로 강조했던 ‘노사 법치주의’를 건설 현장에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서울 곳곳의 건설 현장에서 만난 비노조 노동자들은 건설노조의 횡포를 엄단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건설노조 갑질에 건설 현장이 몸살을 앓고 있다며 법을 무시하는 무소불위의 행동에 ‘울며 겨자 먹기’로 요구를 들어주는 일도 많다고 하소연했다.

19일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사무실 앞에서 노조원들이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경찰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남정탁 기자

30년 경력 건설직 노동자 60대 김모씨는 “나는 비노조인데, 건설노조를 보면 노조원을 써달라며 공사장 정문을 가로막고 아침마다 꽹과리를 치기도 한다”며 “이런 행위를 여러 번 보는데 (그때마다) 다른 근로자들은 (제대로) 일도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노조 노동자 50대 이모씨는 “노조가 공사 현장에 와서 소장이나 건설사 상대로 (특정) 장비를 써달라고 요구한다”며 “대형 건설사보다 노조가 더 힘이 세다”고 주장했다.

 

건설사에서 근무하는 A씨는 “주로 골조업체가 들어오거나 타워 크레인을 쓸 때 노조가 찾아와서 일거리를 달라고 요구하고 거부하면 연회비나 조합비를 달라고 한다”며 “시장이 노조 상대 비용을 염두에 둬서 전체 단가가 올라가면 결국에 발주처나 분양자가 손해를 본다”고 말했다.

 

마포구의 한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는 비노조 노동자 이모씨는 “(건설노조가) 일할 때마다 방해하니까 싫다. 돈 달라고 그러는 것”이라면서 “돈 주면 가고, 돈 안 주면 공사 현장에서 괜찮은 부분도 나쁘다면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가서 신고한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건설노조가 와서 스피커도 키워서 꽝꽝 소리를 내니까 일하는 사람들이 일하기도 불안하고, 망치질하다가 손 때리고 그러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건설 현장에서 안전감독을 하는 60대 황모씨도 “서울보다 지방 노조가 더 심하다”며 “예전에는 노조가 힘든 사람들을 위해 있었지만, 이제는 무소불위가 됐다”고 혀를 내둘렀다.

서울 금천구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서울경기지부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건설 현장 불법행위 관련 압수수색을 하고 있는 모습.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이날 한국노총, 민주노총 8개 사무실과 자택 등 총 16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뉴시스

◆국토부 “건설 현장 불법행위 2070건 신고”

 

경찰은 지난달 8일부터 오는 6월 말까지 건설 현장 불법행위에 대한 특별단속에 나섰다. 특별단속을 시작한 이래 전날까지 929명(186건)을 수사해 이 중 7명을 구속 송치하고, 16명을 불구속으로 검찰에 넘겼다. 특별단속 이전에도 울산에서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고 공사 중단을 협박한 혐의로 민주노총 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지부 비계 분회 간부 2명이 구속된 바 있다.

 

국토부도 이날 최근 2주간 전국 1489개 건설 현장에 대한 실태조사에서 월례비 강요 등 불법행위 2070건이 신고됐다고 밝혔다. 대한건설협회·한국주택협회·대한전문건설협회 등 건설 관련 단체 12곳을 통해 진행한 조사에서 B건설은 최근 4년간 타워 크레인 조종사 44명에게 월례비 등 명목으로 38억원을 지급해야 했고, C건설은 공사 현장 한 곳에서 10개 노조로부터 강요받은 전임비로 월 1500만원가량을 지급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월례비는 급여 외 별도로 월 500만∼1000만원씩 지급됐고, 전임비는 노조당 100만∼200만원씩 건네진 것으로 조사됐다.

 

불법행위가 발생한 건설 현장은 수도권이 45.6%(681곳)로 절반가량이었고, 부산·울산·경남권이 34.9%(521곳)를 차지했다. 두 지역에 대한 불법행위 신고가 80% 집중됐다. 유형별 불법행위를 보면 타워 크레인 월례비 요구가 58.7%(1215건)로 가장 많았고, 노조 전임비 강요 신고가 27.4%(567건), 장비 사용 강요가 3.3%(68건)였다. 이번 조사에선 118개 건설사가 월례비를 계좌로 지급한 내역 등 입증 자료를 제출해 노조의 부당한 금품 요구 피해액을 신고했다. 이들 건설사의 피해액은 3년간 1686억원에 달했다.

불법행위로 인해 공사도 최소 이틀에서 길게는 120일까지 지연됐다. D건설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는 4개 건설노조가 외국인 근로자 출입을 통제하며 작업을 방해해 공사가 1개월 지연됐고, 수당 지급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집회를 벌여 3개월의 공사 지연이 추가로 발생하기도 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그간 민간 건설사들이 건설노조의 불법행위에 속절없이 끌려가고, 보복이 두려워 경찰 신고조차 못했다”며 “노조 횡포가 건설사의 자포자기,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어내겠다”고 장담했다.

 

◆“노조 자정 못해… 엄정 대응 불가피”

 

전문가들은 건설노조의 불법행위가 오래전부터 지적돼 온 문제라며 노조가 자정 능력을 잃었기 때문에 엄정 대응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박광배 대한건설정책연구원 경제금융연구실장은 “그동안 문제가 많았는데 문재인정부에서는 업체들이 경찰에 신고해도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강제수사가 과한 조치라는 지적에 대해서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발적인 조치였다면 다른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지만 건설노조 건은 이전부터 논란이 됐고 불법행위가 과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며 “불법을 계속 눈감아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노조의 불법행위만 엄단할 게 아니라 건설시장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비노조 건설노동자 60대 박모씨는 “정부가 대화로 풀어야 하는데 방법이 잘못됐다”며 “건설노조가 잘못한 건 따지더라도 노조는 노동자를 위한 단체지 악의 근원은 아니다”라고 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건설 현장에서 사용자나 다단계 하도급 등에서 생기는 문제에 대항하기 위해 노조가 행동하는 측면도 있다”며 “양면을 모두 보고 정부가 공정한 집행을 해야지 노조를 불법 단체처럼 규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조언했다. 이어 김 교수는 “현장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수사보다는) 구멍 뚫린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19일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안탄압 중단 촉구 및 국정원 동원 노동탄압·공안통치 부활 윤석열 정권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민노총 “대통령이 민주 유린… 총파업 투쟁”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국가정보원과 경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대통령의 사주를 받아 국정원이 메가폰을 잡은 한 편의 쇼”라며 총궐기와 총파업으로 윤석열정부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19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단 한 명의 책상 하나를 압수수색하는 데 경찰 1000여명이 동원되고, 사다리차와 에어매트리스까지 등장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당사자와 변호인에게만 제공돼야 하는 영장 내용이 언론을 통해 유포되고 근거 없는 확대재생산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날 국정원과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민주노총 본부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한 데 이어 이날 건설현장 불법행위 정황을 확보한 것을 근거로 또다시 민주노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어지자 긴급 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힌 것이다.

 

양 위원장은 “국가보안법은 역사의 유물로 사라졌어야 할 법”이라면서 “수십년간 쌓아온 민주주의가 대통령 한 명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규탄했다. 아울러 이번 압수수색은 “무능과 무책임으로 망가진 외교, 민생, 여당의 자중지란을 덮고, 정권을 향해 쓴소리를 멈추지 않는 민주노총의 입을 막기 위한 색깔 공세”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 순방 중 ‘UAE의 주적은 이란’이라고 발언한 것을 덮고, 내년 경찰로 이관되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과 위헌판결을 앞둔 국가보안법을 지키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윤석열정권의 폭주를 막기 위해 오는 5월1일 노동절쯤 총궐기를 진행하고 7월에는 총파업 투쟁에 나서겠다며 윤석열정부에 대한 ‘강대강’ 기조도 표명했다.

 

시민사회계에서도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참여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센터·전국농민회총연맹 등 231개 단체는 이날 대통령실 인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정부는 진보진영에 대한 공안탄압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윤석열정부가 시대를 역행하는 국정원과 국가보안법의 망령을 되살려 다시 한국 사회를 지배하려 한다”며 “국정원 댓글부대·여론조작·간첩 조작 등을 저지른 이명박·박근혜정부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