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최강 한파가 설 연휴 끝자락에 찾아온 가운데 도시가스 요금, 열 요금 인상 등으로 난방비 폭탄을 맞은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한파로 이번 달 난방 수요가 증가하면서 다음 달 난방비는 더욱 늘어날 전망인데, 식품 물가까지 줄줄이 인상되면서 서민들은 더 추운 겨울을 견뎌야 할 것으로 보인다.
25일 한국도시가스협회에 따르면 1월 서울 도시가스 소매요금은 1MJ(메가줄·가스 사용 열량 단위)당 19.69원으로, 전년 동기(14.22원) 대비 38.4% 상승했다. 도시가스 요금은 중앙·개별난방 가구에 주로 쓰인다. 난방 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는 한국가스공사가 도매요금을 책정한 뒤 각 시·도가 공급 비용을 고려해 소매요금을 결정한다.
앞서 가스 도매요금은 주택용을 기준으로 지난해 네 차례에 걸쳐 5.47원 올랐다. 1년 새 인상률은 42.3%에 달한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글로벌 에너지 수급난이 커지면서 국내 LNG 수입액이 567억달러(약 70조원)로 급증한 것이 가스 요금 상승으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종전 최대였던 2014년 수입액인 366억달러를 뛰어넘는 사상 최대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LNG 수입 가격은 2021년 12월 t당 893원에서 1년 만인 2022년 1월 1255원으로 40.5% 급등했다.
전기료는 2022년 세 차례에 걸쳐 ㎾h(킬로와트시)당 19.3원 올랐다. 이어 올해 1분기에도 13.1원 오르면서 2차 오일쇼크 시기였던 1981년 이후 42년 만에 최고 인상폭을 기록했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밑도는 최강 한파가 다시 찾아오면서 전력 수요가 솟구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이번 주 최대전력(하루 중 전력 사용량이 가장 많은 순간의 전력 수요)은 93.5GW(기가와트)로 예상됐다. 최대전력은 앞서 한파가 기승을 부린 지난달 14일(90.128GW)에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90GW를 넘은 데 이어, 같은 달 22일(92.999GW)과 23일(94.509GW)에 연이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새해 들어 식품 물가가 줄줄이 인상되면서 고물가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개발공사는 다음달 1일부터 삼다수 출고가를 평균 9.8% 올린다. 2018년 이후 5년 만의 가격 조정으로 인건비 상승과 페트병 등 재료값 상승 등에 따른 조치다. 2월부터 대형마트에서 500㎖짜리 삼다수는 480원, 2ℓ 제품은 1080원에 판매된다. 다만 생수는 최종 판매자가 판매가를 표시하는 ‘오픈 프라이스’ 제도를 적용하기 때문에 판매처마다 가격이 다를 수 있다.
웅진식품도 음료 20여종의 가격을 2월부터 평균 7% 인상한다. 편의점 가격 기준으로 아침햇살 500㎖는 2000원에서 2150원으로, 하늘보리 500㎖는 1600원에서 1800원으로 각각 오른다. 초록매실 180㎖는 1300원에서 1400원으로 인상된다.
아이스크림 제품도 일제히 가격이 오른다. 빙그레는 다음달부터 일반 소매점 기준으로 메로나, 비비빅을 비롯한 바 아이스크림 7종과 슈퍼콘 등의 가격을 1000원에서 1200원으로 20% 인상한다고 밝혔다. 빙그레는 “원·부자재 가격과 인건비, 물류비, 에너지 비용 등이 지속해서 올라 제조원가 상승이 더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며 “원가 부담을 줄이고자 다방면으로 노력했으나 경영 압박이 심화해 불가피하게 가격 인상을 단행한다”고 설명했다.
◆고물가 여전한데 돈 더 풀자는 巨野
새해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설 연휴를 기점으로 ‘30조원 추경’ 편성 요구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가파른 물가 상승에 대한 서민 생계비 지원과 함께 최근 ‘난방비 폭탄’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는 이유다.
하지만 ‘물가 지원금’ 형식의 추경이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시중에 돈이 풀릴 경우 물가는 상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 재정건전성을 주장하는 현 정부의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 편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지만, ‘현재로선’이라는 단서를 단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5일 정부·여당에 30조원 규모 ‘긴급 민생 프로젝트’ 추진을 재차 촉구했다. 이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30조 추경, 30조 지원예산을 (신년 기자회견에서) 말씀드렸는데 정부·여당이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난방비 폭등 등 국민의 큰 고통이 계속되지 않게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다시 한 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추경 요구는 설 연휴 이후 ‘난방비 폭탄’ 논란이 불거지면서 구체화하고 있다. 난방비 급등으로 인한 서민 피해가 현실화한 만큼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야당은 2월 임시국회와 함께 추경 편성을 본격 촉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일단 추경 편성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추 부총리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추경을 현재로서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기재부 한 관계자도 “추경을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전 정부의 추경에 대해 그동안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는데, 새해 들어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돈을 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추경 효과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가뜩이나 고물가인 상황에서 추경으로 인해 돈이 풀리면 물가가 더욱 올라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지난해 2차 추경 편성(정부안 36조4000억원) 당시 물가 인상 효과를 0.1%포인트로 추산한 바 있다.
소비자물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넘어선 데 이어 올해도 상반기 내내 고물가 행진을 이어갈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당초 예상보다 고물가 상황이 오래 지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한국의 소비자 물가상승률 둔화 속도가 주요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디게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추경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전망이다. 추 부총리는 의원 시절부터 재정을 통한 일시적 경기부양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해왔지만, 하반기에도 경기 악화 조짐이 이어질 경우 ‘마지막 카드’로 추경을 꺼내 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