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 온 서양인, 조선과 마주치다/손성욱/동북아역사재단/1만원
19세기 들어 서양 열강은 힘을 앞세워 중화세계의 문을 두드렸다. 두드림은 빈번해지고 점점 강해졌다. 광저우에서만 서양과의 무역을 허용하던 청은 제1차 아편전쟁 후 4개의 항구를 더 열어야 했다. 2차 아편전쟁 때는 함풍제가 베이징을 버리고 열하로 도망갔다. 황제의 정원인 원명원이 불에 타 유린당했다. 청은 더 이상 서양 열강의 동진을 막을 힘이 없었다. 서양인들은 청나라 땅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얻었고, 서양 열강은 언제든 자금성을 노릴 수 있는 위치에 공관을 세웠다. 그리고 문호를 개방하지 않는 조선을 엿보기 시작했다.
베이징 거리를 활보하게 된 서양인들은 자연스레 조선인과 마주쳤다. 선교사, 외교관, 기자, 사진사, 엔지니어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서양인들이 사행을 온 조선인과 접촉했다. 조선은 청에 해마다 정기적으로 사신단을 보냈다. 특별한 사유로 보낸 비정기 사행단도 적지 않았다. 사행길을 통해 서학이 들어오고, 북학이 탄생했다.
1860년대 초 베이징에서 조선인을 마주친 영국인 니컬러스 데니스(1839∼1900)는 ‘중국인들이 조선인에 대해 낯선 사람에게 사납고 편협한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지만, 직접 조선인들을 만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고 조선인들은 시종 예의 바른 태도를 보였다’고 기록했다. 그는 조선인의 특징으로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