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메멘토 비베레(Memento vivere)

아직 끝나지 않은 팬데믹 터널
살아야 할 운명임을 기억하라

빅터 라발, ‘알아보다’(‘데카메론 프로젝트’에 수록, 정해영 옮김, 인플루엔셜)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꼭 3년이 되는 날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그날 일기를 찾아보니 기저질환자인 어머니 걱정이 앞섰다. 누적 확진자가 3000만명을 넘어선 지금 나도 자가격리 중이다. 그래서인지 실내 마스크 착용을 의무가 아니라 권고로 전환한다는 기사를 조금은 무덤덤한 기분으로 접했다. 확진자 수가 확연한 감소세라고 하니 안심해도 된다는 뜻이겠지. 아무튼 자가격리를 하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이 밀려든다. 3년 전 생활 속으로 불쑥 뛰어 들어왔던 코로나19의 불안과 두려움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제 어디쯤 지나온 것일까.

조경란 소설가

빅터 라발의 단편소설 ‘알아보다’는 뉴욕에 봉쇄 조치가 시작된 직후의 이야기다. 사람들이 떠난 도시에는 갈 데도 없고, 갈 데가 마땅치 않은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집에 머물러 있다. 그녀는 이제 막 그 도시의 6층짜리 공동주택에 원룸 아파트를 얻었고 회사 일은 원격으로 하며 낡아빠진 슬리퍼를 끌고 슈퍼마켓에 가서 생필품을 사 오곤 한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앞에서 필라라는 여성을 만난다. 4층에 사는 필라는 피아노 레슨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이제 아이들은 오지 않는다. 두루마리 화장지도 구할 수가 없어서 난감한 상태. 필라는 앞코가 뾰족하고 피아노 건반처럼 검정과 흰색이 섞인 멋진 옥스퍼드화를 신고 있었다. “전생을 믿나요?” 필라가 이웃인 그녀에게 말을 건넨 그날, 그녀가 4층 필라의 현관 앞에 두루마리 화장지 세 개를 놓아둔 후부터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이 짧은 소설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고 슬픈 생동감을 불어넣는 사람은 건물 관리인이 아닐까 싶다. 그가 은색 스프레이 페인트 깡통을 든 채 건물을 돌아다니며 종종 문 앞에 V자를 큼지막하게 그려 놓는 것을 보고 그녀가 묻는다. “V는 ‘바이러스(Virus)’인가요?” 관리인이 눈썹을 올렸다 내리며 대답했다. “비었다(Vacant)는 거지.” 그가 방금 페인트로 쓴 V자에서는 페인트가 흘러내렸고 그건 마치 눈물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고 독자인 나는 상상한다. 비었다는 의미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봉쇄가 3개월째 접어들자 팬데믹의 공포가 두 사람 사이에, 이웃들이 거의 남지 않은 공동주택에 팽팽히 들어찼다. 그녀가 필라에게 원격 피아노 수업 준비를 도와주겠다고 하자 특유의 장난기를 모두 잃어버린 필라는 그녀에게 둘 다 알고 있으나 서로 하지 않았던 말을 해버리고 만다. “화면은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환상을 갖게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그리고 자신들은 버려진 거라는 말도. 어떤 진실은 정면에서 들으면 무섭기도 하지 않는가. 그녀는 바쁘다는 핑계로 더는 필라를 찾아가지 않는다. 도시는 봉쇄되었고 병원도 갈 수가 없는데 확진된 필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가 필라의 문 앞에서 관리인을 마주쳤을 때 그의 눈은 충혈돼 있으며 “오른손 손가락은 이제 완전히 은색이 되어 있었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필라는 그녀에게 자신의 옥스퍼드화를 메모와 함께 그녀에게 남겨 두었다. 너를 기다렸어, 라는 말도.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하던 2020년에 ‘뉴욕타임스’는 전 세계 작가들을 상대로 팬데믹 이야기를 기획했다. “어려운 시기에 소설을 읽는 것은 그 시기를 이해하는 방식이자 그 시기를 끈기 있기 버텨내는 방식이기도 하다”라는 신념으로. 그 결과물이 ‘알아보다’가 수록된 소설집 ‘데카메론 프로젝트’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속 젊은이들은 이주 후 그들이 떠난 도시로 돌아갔다. 페스트가 끝나지 않았어도 그들의 삶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의 메시지가 ‘메멘토 비베레(Memento vivere)’, ‘당신은 살아야 할 운명임을 기억하라’라는 걸 새로 배운다. 우리는 코로나19를 아직 다 지나가지 않았고 어쩌면 그럴 수도 없지만, 3년 동안 끈기 있게 경유(Via)해왔다. 바뀌는 방역 대책을 접하니 나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돌보면서 살아야 할 새로운 시점이 온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