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상끼리 통화하자" vs 러시아 "합의된 것 없다"

숄츠, 언론 인터뷰서 "우크라 전투기 지원 불가"
러시아 자극하지 않으면서 푸틴에 '소통' 제의
크레믈궁 "대화 열려 있지만… 아직 협의 없어"

유럽연합(EU)을 이끄는 독일이 러시아와의 대화를 희망하고 나섰다. 최근 러시아와 싸우는 우크라이나에 독일이 자국 주력 전차 레오파르트2를 제공키로 결정한 것 때문에 독일과 러시아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독일의 대화 제안에 러시아는 “대화는 가능하지만 아직 예정된 것은 없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왼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9일(현지시간) 독일 ‘타게스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직접 소통을 통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숄츠 총리는 “나는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할 것”이라며 “서로 대화를 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이 끔찍하고 의미 없는 전쟁을 끝내는 것은 푸틴 대통령한테 달렸다”고 덧붙였다.

 

최근 우크라이나에 레오파르트2 탱크를 지원키로 한 독일 정부 결정은 러시아를 분노케 했다. 세르게이 네차예프 독일 주재 러시아대사는 성명에서 “극도로 위험한 이번 결정은 갈등을 새로운 단계의 대립으로 이끌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독일이 분쟁에 개입할 의지가 없다는 독일 정치인들 발언과도 배치된다”며 “제2차 세계대전 시절 나치 범죄로 인해 독일이 러시아에 지고 있는 역사적 책임을 저버리는 것을 뜻한다”고도 했다.

 

1939년 2차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은 독일·소련(현 러시아) 불가침 조약을 깨고 1941년 6월 소련을 침략한 바 있다. 약 4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전쟁 끝에 소련이 이기고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긴 했으나, 군인과 민간인을 더해 소련인 27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빚어졌다. 당시 전쟁 초반 소련은 우수한 탱크를 앞세운 독일군 기갑부대의 전격전(blitzkrieg)에 속수무책 당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이런 러시아를 달래려는 듯 숄츠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전차는 제공해도 전투기는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더는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푸틴 대통령에게 일종의 ‘당근’을 던진 셈이다.

 

폴란드 육군이 운용하는 독일제 레오파르트2 탱크. 폴란드는 나토 회원국 가운데 가장 먼저 자국이 보유한 레오파르트2 전차의 우크라이나 지원 방침을 밝혔다. 폴란드 국방부 제공

하지만 독일의 대화 제안을 대하는 러시아의 태도는 차갑기만 하다. 크레믈궁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은 숄츠 총리와의 접촉에 열려 있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놓으면서도 “아직 전화 통화 등 합의된 일정은 없다”고 짧게 말했다.

 

앞서 영국, 독일, 미국 등이 앞다퉈 우크라이나에 자국의 주력 전차를 보내기로 하자 러시아는 “이번 분쟁에 대한 직접 개입으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자칫 러시아 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간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음을 경고한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숄츠 총리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서방의 정책은 파괴적”이라며 “독일이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한 접근 방식을 재고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