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021년 가상화폐 열풍은 주기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비트코인의 발행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내년으로 다가오면서 최근 가상자산 시장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은 점차 영역을 확장해 전통 금융시장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가상자산 시장을 규정한 법안은 아직까지 미비하다.
지난해 FTX 파산 사태, 테라-루나 폭락에 놀란 국회는 현재까지 발의된 가상자산 관련 법안 논의를 계획했지만 경기침체로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이 뜸해지자 법안 처리는 ‘뒷전’이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이 다시 회복세를 보이는 현시점에서 지금까지 발의된 가상자산 법안이 어느 정도 수준이고, 어떤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또 한계점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가상자산도 증권처럼 규제… 금융위가 사업자 인가·감독, 사업자는 예치금 보호 의무
3일 세계일보가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인 가상자산 관련 19개 법안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 법안은 가상자산 시장을 금융위원회가 관할하는 증권시장과 비슷한 개념으로 관리하도록 설계됐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지난해 10월 발의한 법안에는 금융위 내 디지털자산위원회를 설치하고 금융감독원을 통해 가상자산 시장을 감시하도록 규정했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지난해 11월 발의한 법안에도 금융위에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감독·검사 권한을 부여하고 업무 일부를 금감원장에 위탁하는 내용이 담겼다.
가상자산 시장을 관리하는 금융위에는 가상자산 사업자를 인가하는 역할이 주어진다. 가상자산 사업자가 갖춰야 하는 조건은 법안마다 차이가 있다. 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2021년 5월 발의한 법안은 가상자산 사업자를 거래업, 지갑업, 발행업으로 나눠 각각 30억원, 20억원, 5억원 이상의 자기자본을 갖추도록 했다. 무소속 민형배 의원과 민주당 이용우 의원의 법안에선 가상자산거래업의 경우 5억원 이상의 자기자본을 조건으로 뒀다. 국민의힘 정희용 의원안은 거래업을 위해 10억원 이상의 자기자본을 갖추도록 했다.
◆가상자산 공시 규정 담겼지만 실효성은?
이용자가 가상자산 투자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하는 공시 관련 법안도 가상자산 법안의 핵심 주제다. 가상자산 시장이 활성화할 때마다 이뤄지는 무분별한 ICO(가상화폐 공개)는 투자자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해 피해자를 양산하는 한 원인이 됐다. 국회 주요 법안에선 가상자산 발행자 및 특수관계인의 가상자산 보유 현황, 발행량, 가상자산의 상장과 관련해 거래업자가 수령하는 대가 정보, 가상자산의 투자 정보를 적시한 백서, 이상거래 등을 거래소가 공시하도록 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지난달 16일 가상자산의 회계상 공시 의무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익명의 거래가 이뤄지고 초국가성을 가진 가상자산의 공시가 얼마나 정확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는 이견이 있다. 특히 발행자가 특정되지 않거나 해외 법인을 가진 가상화폐의 경우 거래소나 정부가 공시 의무를 이행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지난해 시가총액 10위권까지 오른 가상화폐 테라-루나의 경우에도 거래소가 백서 등 공시 정보를 제공했지만 사실상 내재적인 위험을 감지할 순 없었다.
블록체인 정보분석 플랫폼 쟁글의 김준우 공동대표는 “블록체인 특성상 온체인(블록체인 거래)상에서 데이터를 직접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정보항목은 무엇이며 어디까지 가능한지, 기존 기업 공시처럼 발행사 혹은 운영사가 직접 공개해야 수집할 수 있는 정보항목이 무엇인지 선제적인 논의가 돼야 한다”며 “탈중앙화돼 운영주체를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 어떻게 할지 등 가상화폐 운영특수성에 대한 이해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상자산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규제도 법안에 포함됐다. 주요 법안은 미공개중요정보 이용행위, 시세조종행위, 부정거래행위 등을 불공정거래로 정의하고 처벌 조항을 담았다.
◆전문가들 “현 법안 다소 미흡한 수준… 가상자산 시장 흐름 따라 재논의해야”
전문가들은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가상자산 시장을 처음 규정한 것에 의미가 있지만 해외에서 이뤄지는 논의에 비하면 다소 미흡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가상자산 시장은 스테이블 코인, 디파이(탈중앙화금융), 덱스(탈중앙화) 거래소 등 거듭 발전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비가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1월에 예정됐던 국회 정무위의 가상자산 법안 논의가 다른 법안에 밀려 다음 달로 미뤄지는 등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기훈 홍익대 교수(경영학)는 “완전한 가상자산 법안을 만들기는 어려우니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만들고 완전한 법안을 만들자는 의미로 현재 법안들이 제출됐다”며 “지금까지 가상자산 시장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투자를 착취할 수 있는 구조도 만들어 놨는데 현재 법안만으로는 다단계와 시세조작을 막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도 “가상화폐 발전 속도에 비해 법안이 나온 시간이 꽤 돼 통과되기까지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논의를 관심 있게 보며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국내 가상화폐 시장의 발전 측면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규제에만 몰두한 나머지 디파이 등 가상화폐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통찰력을 가지고 바라보면 시장의 이니셔티브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