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 “개헌은 진짜 선진국 향하는 ‘문턱’… 국민의 절절한 요구” [창간34 - 인터뷰]

김진표 국회의장

지금 헌법은 무려 36년 前에 개정한 것
그때 비해 대한민국 위상 많이 달라져
정치의식 높아지고 사회적 요구 다양

개헌만큼 확실한 정치개혁 카드 없어
역대 대선 후보들 앞다퉈 제안했지만
정치권 유불리 따지다 유야무야 경험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 잠식 우려 높아
‘개헌절차법’ 만들어 추진 계획 명문화
예측 가능하고 투명하게 진행 바람직
“개헌을 ‘정치인의 말장난’으로 만들지 말라 이겁니다. 개헌은 국민의 절절한 요구입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개헌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원탁을 힘껏 내리쳤다. 정치권이 정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아니면 말고 식으로 개헌을 띄우는 행태를 꼬집으면서였다. 김 의장은 세계일보 창간 34주년을 맞아 1월 27일 국회 본청 국회의장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개헌은 대한민국이 반드시 넘어가야 할 ‘문턱’”이라며 “이것을 넘어가면 진짜 선진국이 되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또 한동안 표류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세계일보 창간 34주년을 닷새 앞둔 1월 27일 국회 본청 국회의장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개헌은 대한민국이 반드시 넘어가야 할 ‘문턱’”이라며 “이것을 넘어가면 진짜 선진국이 되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또 한동안 표류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개헌만큼 정치개혁으로 확실한 카드도 없다. 대권을 꿈꾸는 이들이 한결같이 후보 시절에 개헌 카드를 빼 든 이유다. 그렇지만 권력을 쥔 이후에는 달라진다.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삼키는 개헌을 굳이 이슈로 삼아 국정 동력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나섰지만 그렇게 36년이 성과없이 흘러왔다.

 

이번엔 김 의장이 새해 들어 다시 개헌 깃발을 들어 올렸다. 때마침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로의 선거제 도입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주목도가 높아졌다.

 

선거가 없어 개헌 적기인 올해 과연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김 의장은 ‘개헌 블랙홀’ 논리의 벽을 넘기 위해 개헌의 당위보다는 추진 과정의 디테일에 신경 쓰고 있다. 개헌 열차를 출발시키는 게 중요해서다. 이를 위해 국회 구성원들 간 개헌 합의서이자 국민과의 약속 격인 ‘개헌절차법’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정치권이 개헌 계획을 법으로 명문화하고 그 절차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 ‘개헌의 디딤돌’로 삼자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 왜 개헌이 필요한가.

 

“이미 개헌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어느 정도 확립돼 있다. 여론조사마다 3분의 2 이상의 국민이 개헌 필요성에 공감한다. 지금 헌법은 36년 전에 개정한 것이다. 그때와 지금의 대한민국 위상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국회의장으로서 해외 나가보니 스페인과 포르투갈 같은 나라들이 우리를 보고 자기들보다 한참 더 선진국이라고 하더라. 그러니 현재 헌법이 우리나라에 맞을 수 있겠나. 선진국이라는 건 국민의 교육, 정치의식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단 것이다. 사회적 요구 또한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생)의 요구가 이전과 다르지 않나. 최근의 남녀 갈등도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것이다. 이런 요구와 갈등을 담아내야 할 우리 정치제도는 여전히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걸 결정하고 집행하는 구조다. 진짜 선진국이 되려면 이 다양성이 창의력이 되도록, 나아가 국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새 체제, 새 헌법이 필요하다.”

김진표 국회의장/2023.01.27 서상배 선임기자

―수차례 개헌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다.

 

“선거가 자주 있다 보니까 정치권이 유불리를 따지다가 유야무야되기도 했다. 개헌은 대통령이 반대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대통령 임기 초반에는 국정 동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까 하는 우려에 소극적이고, 임기 말에는 동력이 없어져서 못 하기 마련이었다. 그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험이다. 노 전 대통령이 여소야대 정국을 끌고 가기 힘들어 대통령 5년 단임제라도 고쳐보자고 진정성을 갖고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지만 ‘정략적 의도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 무산됐다. 결국 개헌을 위해서 중요한 건 ‘개헌 블랙홀’ 논리의 극복이다.”

 

―여전히 개헌 블랙홀 논리가 거세다.

 

“개헌 블랙홀에 대한 우려가 없도록 하고 정치적 유불리나 국정운영 등 정치환경에 개헌이 영향받지 않도록 예측 가능하며 투명하게 진행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 여론을 최대한 수용해서 개헌 당위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개헌에 대해 상당한 교육을 받도록 해서 공론을 만드는 게 방법이다. 그게 바로 숙의민주주의다. 신고리 원전을 두고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한 적 있다. 이번엔 개헌 국민 참여단을 1000여명 규모로 구성해서 구체적 사안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게 한 다음에 결론을 내도록 하는 거다. 이런 내용을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에 전달하고 여기서 여야, 전문가 간 의견차가 있을 때 공론화위 결론을 기준으로 삼도록 해야 한다. 이 모든 절차는 개헌절차법에 명시될 것이다. 그게 이전 개헌 시도와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될 거다.”

김진표 국회의장/2023.01.27 서상배 선임기자

―개헌의 방향성은.

 

“너무 많은 걸 고칠 순 없다. 어느 한쪽도 불리해지면 안 된다. 대통령이나 여당, 야당, 국민 모두가 ‘그만하면 됐다’는 선에서 합의하면 된다. 그런 전제에서 보자면 대통령 4년 중임제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는 것 같다. 국민들이 국가 최고 지도자를 내 손으로 뽑는다는 데 만족감이 상당히 높다. 반면 국회에 대한 불신은 크다. 결국 대통령제를 벗어나긴 힘들어 보인다. 두 번째로 국무총리 임명에 국회 권한을 늘리는 쪽으로 개헌이 될 수 있을 거라 본다. 지금은 대통령에 권한이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 행정부 안에 대통령이 진지하게 의견을 들어야만 하는 인사가 있어야 한다. 총리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임명권의 99%를 대통령이 혼자 갖고 있다 보니 총리 권한이 사실상 사문화됐다. 국회가 총리 후보자를 2명 추천하고 대통령이 1명을 고르든, 대통령이 2명 추천하고 국회가 1명을 선출하든 임명 절차를 바꿀 필요가 있다.”

 

―국회 권한이 더 강화될 필요가 있는 부분은.

 

“영미법계에서는 조약법률주의·예산법률주의가 적용되고 있다. 조약·예산이 법률에 준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조약만 해도 대통령 마음대로다. 어느 나라와 무슨 조약을 체결하든, 일단 체결하고 국회에 던져서 비준해달라는 식이다. 미국을 보면 조약을 체결하려고 하면 상원에 부탁해야 한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예로 들면 일정 기간 동안 대상이 되는 품목에 대해서 그 자세한 내용을 미 상원에 보고하고, 상원에서 좋다고 하면 협정을 체결하는 식이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해야 한다.

 

예산도 마찬가지다. 입법권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국회가 행정부 예산 편성에 개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나라는 행정부가 마음대로 예산안을 짜서 9월1일 국회에 던지고, 12월2일까지 통과시키지 않으면 정부안 그대로 표결하는 식이다. 그런데 9월부터 11월까지 국정감사에 대정부질문, 추석 연휴까지 끼어 있다 보니 한 달 정도 심의 기간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 이 문제를 개선하려고 국회법·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이미 내놨다. 간단히 설명하면 예산 편성 단계별로 국회 의사가 정부에 전달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산 편성 작업은 매년 3월 대통령이 주재하는 재원배분장관회의부터 시작되는데, 일단 거기 올라가는 의안을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보고 전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먼저 보고하게 하자는 것이다. 또 분야별 투자전략 등 예산안의 큰 방향이 정해지는 5월 정부의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앞서 분야별 재원배분 방안을 기재부가 국회 예결위에 보고하도록 적시했다. 결산심사도 7월15일까지로 앞당겼다. 이런 법 개정이 현행 헌법 틀 내에서도 가능하다는 생각이지만 어렵다면 개헌에 담을 수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2023.01.27 서상배 선임기자

―결국 대통령과 여야 정치 지도자들의 합의가 관건이다.

 

“그런 정치적 합의를 이끌기 위해 개헌절차법이 필요한 것이다. 개헌절차법은 국회 정개특위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도출되고 전원위원회 등을 통해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면 공직선거법과 함께 4월에는 처리 가능한 여건이 조성될 것이다. 선거법 개정이 이뤄지면 우리 국회가 ‘합의의 정치’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경험이 ‘개헌, 그거 못할 게 뭐 있냐’는 인식을 하게 만들고 개헌절차법에도 합의하게 할 것이다.”

 

―새해 경제위기론으로 힘겹다.

 

“모두가 힘들고 혼란스러운 환경이지만 새로운 전략으로 지금의 위기를 대반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특히 미·중 대결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오히려 한국에 기회요인이 될 수 있다. ‘세계의 공장’이던 중국이었지만 최근에는 ‘차이나 엑소더스(탈중국)’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을 빠져나온 국제 투자자금이 옮겨갈 수 있는 국가는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와 대만 정도밖에 없다. 국회, 정부, 기업, 국민이 힘을 모아야 어떤 지정학적 위험에도 흔들리지 않는 국가 위기대응 역량을 구축할 수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1947년 황해도 연백 출생(76) ●서울대 법학과 졸업 ●제17·18·19·20·21대 국회의원 ●김대중정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노무현정부 초대 경제부총리·교육부총리 ●민주당 원내대표 ●문재인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장 ●국회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