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중전차 지원 약속을 받아낸 우크라이나가 추가로 전투기 지원을 요청해 접경국 폴란드가 긍정적 반응을 내놨으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양대 축인 미국과 독일은 선을 그었다. 자칫 전쟁이 나토와 러시아 간 전면전으로 확전하거나 러시아에 전술핵무기 사용 명분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조 바이든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방문 후 백악관으로 복귀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우크라이나에 F-16 전투기를 지원하는 것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아니요(No)”라고 답했다.
그간 미국 내에서는 전투기 지원이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인 기류가 강했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이를 재확인한 것이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전투기 지원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인지 아니면 즉각 이전에만 반대하는 것인지에 관한 추가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역시 전날 현지언론 인터뷰에서 “막 레오파르트2 전차를 보내겠다고 약속해놓고 다른 군사원조 논의를 하는 것은 경솔해 보인다”며 “나토군은 러시아와 전쟁 중이 아니며, 그런 긴장의 고조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조바심을 내고 있다. 소련식 탱크에 익숙한 우크라이나군이 레오파르트2 전차 운용 훈련을 받는 데 6주가량이 필요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서방 전차가 실제 전장에 투입되려면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이고, 두 달가량 교착 상태를 이어가는 동부·남부 전선에 최근 러시아 병력이 증강되고 있기 때문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9일 연설에서 “러시아는 전쟁을 질질 끌며 우리 전력이 고갈되기를 바란다”며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우리의 무기로 삼아야 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무기의 공급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F-16 등 서방 전투기가 전달되면 소련 시절 만들어진 전투기를 사용 중인 우크라이나군의 제공권이 한층 강화될 수 있다.
나토의 또 다른 주요 회원국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투기 제공 가능성에 대해 “아무것도 배제하지 않는다”면서도 “상황을 악화하거나 프랑스군의 방어 능력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봅커 훅스트라 네덜란드 외무장관도 F-16 이전과 관련해 “금기는 없다”면서도 미국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고 토를 달았다.
전투기 지원 의지를 뚜렷이 밝힌 나라는 아직 폴란드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보이치에흐 스크르키에비치 폴란드 국방부 차관이 31일 AFP를 통해 “현재 F-16 이전에 대한 공식 논의는 없다”고 밝혀 이마저도 실현이 되려면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데다 과거 강대국에 침탈당한 역사가 많아 이번 전쟁에서 가장 강한 반(反)러시아 입장을 보이는 나라 중 하나다.
벤 월러스 영국 국방부 장관은 이와 관련해 “우리가 이런 요청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은 처음에는 ‘아니요’였다가 결국에는 ‘예’가 된다는 것”이라고 씁쓸히 언급했다.
미국 국방부 내에서도 우크라이나가 영토 탈환을 위한 봄철 공세를 준비하는 만큼 “상황이 변했다”며 F-16을 지원하자는 여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고 정치전문지 폴리티코가 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레믈궁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추가 공급은 갈등의 중대한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