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은 사람은 1분을 다투며 사니까 버스 첫차 시간을 15분 앞당긴 건 좋죠. 근데 여전히 일은 빨리빨리 해야 돼요.”
지난달 25일 새벽 서울 강남구로 향하는 8146번 버스에서 만난 이진숙(77·여·이하 모두 가명)씨. 매일 새벽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강남의 빌딩숲으로 향하는 그는 버스 안의 다른 승객들을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고 칭하며 짐짓 웃어보였다.
‘새벽버스’라고 불리는 146번 버스보다 15분 빠른 오전 3시50분에 노원구 상계동에서 강남역을 향하는 8146번 버스는 지난 16일 신설됐다. 이 버스 덕분에 새벽 노동자들의 출근길이 수월해졌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이씨와 같은 고령 노동자들의 저임금 노동환경에는 변함이 없다는 토로가 여전하다.
◆새벽노동자의 ‘공짜 노동’
강남구 청소노동자들의 근로계약서에는 오전 6시 출근이 명시돼 있다. 그렇지만 그 시간에 일을 시작해서는 사무실 직원들이 출근하는 오전 8시 이전에 각층 청소를 끝낼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그들은 최소 오전 5시30분까지는 출근해야 한다.
이씨는 “청소를 하다가 사무실 직원과 마주치면 서로 불편하니까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일을 끝내려고 한다”며 “오전 9시 이전에 출근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 전에 일을 끝내려면 오전 6시 이전에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남구 다른 건물에서 일하는 유옥희(69·여)씨도 “직장인들은 출근해서 깨끗한 사무실이 보고 싶지, 내가 헐레벌떡 청소하는 모습 보고싶지는 않을 거잖아요. 그러니 관습적으로 일찍 마치는 거죠”라고 전했다.
유씨가 일하는 건물은 이명례(74·여)씨 등 청소원 4명이 10층짜리 건물, 총 약 5400㎡를 청소한다. 이들은 오전 5시20분 전에 휴게실에 도착해 유니폼으로 환복 후 5시30분부터 청소를 시작한다.
오전 6시쯤, 이미 20개가 넘는 방과 화장실을 들러 쓰레기통 40여개를 비우고 통 안에 들어있던 플라스틱·캔·종이를 일일이 손으로 분리하는 작업까지 마친 이씨는 “덥다”며 유니폼 조끼를 벗어던졌다. 이날은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7.4도를 기록하는 등 ‘최강한파’가 불어닥친 날이었다. 이씨는 “그나마 겨울이 여름보다는 낫다”며 “여름철에는 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전까지 에어컨도 틀 수 없어 더 괴롭다”고 했다.
그는 쓰레기통을 비운 뒤에는 바닥 기름 걸레질을 시작했다. 기름이 마르는 동안에는 화장실 두곳을 세제로 닦고 마른 걸레로 닦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다시 복도와 방을 다니며 바닥을 물걸레질했다.
청결에 더 신경써달라는 고용주 요구에 따라 노란 박스테이프를 들고 바닥에 떨어진 먼지와 머리카락을 일일이 제거한 뒤에야 한 층의 청소가 끝났다. 이씨는 이렇게 2개 층을 청소한 뒤 동료들과 함께 2개 층을 더 관리한다.
강남구 청소노동자들은 주말노동도 일상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달에 한 번 혹은 두 번 왁스칠을 하러 토요일에 출근을 한다. 근무시간은 오전 6시부터 11시까지고, 휴게시간 1시간을 제외한 4시간이 노동시간으로 인정된다.
이렇게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130여만원. 200시간 가까이 일터에서 보내지만, 새벽 노동 특성상 점심시간(90분) 외에 아침시간(90분)도 쉬기 때문에 하루에 6시간만 근로시간으로 인정된다. 오전 9시 출근하는 노동자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이다.
◆‘공짜노동’을 마다할 수 없는 그들
이들이 ‘공짜 노동’과 저임금을 견디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남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대부분은 나이가 들어 기존에 하던 일을 그만 둔 여성들이다. 여기서도 밀려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공짜노동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요식업 경력만 40년이었던 이명례씨는 2010년 백혈병을 투병하는 아들을 간호하기 위해 가게를 접었고, 2012년 아들이 사망한 뒤로는 청소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남편과 사별한 그는 청소일을 그만두면 자녀들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잘리지 않는 한 청소 일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언급했다.
10년차 청소노동자인 이진숙씨는 과거 재봉틀을 다루는 재봉사였다. 하지만 눈이 나빠지면서 바늘이 잘 보이지 않게 돼 재봉 일을 그만 두고 청소일을 하고 있다. 자녀들은 일을 그만두라고 하지만 그는 “스스로 벌어서 살고 싶다”며 일을 계속하고 있다. 호텔에서 일했던 유옥희씨의 경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2021년 해고돼 현재 청소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박지순(62·여)씨는 “우리만 봐도 다 나이 든 사람이잖아. 다른 직장이라면 다 정년퇴임 지났을 연령대”라며 “나이 든 우리를 고용해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니까 어느 한명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일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사에서도 ‘불만이면 그만 두시라. 그 일 할 사람 많다’는 식”이라고 부연했다.
◆노조 결성 못하는 노동자들…“고용부, 관리감독 강화해야”
지난해 9월 통계청의 ‘2022년 고령자 통계’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 가운데 본인·배우자가 직접 생활비를 마련하는 비중이 65.0%에 달했다. 3명 중 2명이 스스로 생활비를 조달했다. 이 때문에 65~79세 고령자 54.7%가 취업 의사가 있다고 답변했고, 취업을 원하는 이유로는 생활비에 보탠다는 응답이 53.3%로 가장 많았다.
안성식 강북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장은 “강남으로 출근하는 빌딩 노동자들의 경우 대부분 노조가 없고 용역회사와 개별로 계약 맺으니 (저임금 문제에) 대응이 어렵다”며 “여기(빌딩)서 밀려나면 더 열악한 일자리로 갈 위험 있으니까 대응을 시도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과거 서울대 청소노동자로 일하다가 만 70세에 정년퇴임했다는 김정수(72·여)씨는 “서울대에서 일할 때는 월급이 200만원이 넘었고, 명절 떡값이나 연차휴가도 있었다”며 “그땐 노조가 힘이 있으니 학교 측과 대화가 됐는데, 여기는 다르다”고 단언했다. 그는 “강남 청소원들은 다 비슷한 불만이 있지만 해결할 방도가 없으니 뒤로만 얘기하고 삼킨다”고 씁쓸해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사각지대에 방치된 노동자들이 조직화를 통해 목소리를 낸다는 건 대단히 힘든 일”이라면서 “고용노동부가 청소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중간인력 공급업체를 상대로 포괄임금제 악용 등 탈법적 요소가 있는지 단속하고 관리를 하는 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