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영희는 동생을 데려온다. 수업 시간에도 옆에 앉히고 점심도 같이 먹는다. 중도입국 중학생을 위한 겨울방학 특강인데 같이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 동생이 갈 데도 없고 돌볼 사람도 없는 모양이다. 이 상황을 짜증 내야 마땅할 중2 학생에게 매번 기특하다고 칭찬하는 게 빈말인 것 같아 하지 않았다.
철수는 숙박시설에서 지낸다. 하루 2만원짜리 여관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철수가 수업을 마치고 부지런히 돌아가는 곳이 엄마와 겨우 몸을 누일 수 있는 여관방이다. 어쩌면 겨울방학도 여기에서 날 것 같다.
영희는 한국 거주 기간이 5년이 돼 가고 철수는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두 아이 모두 장기 정착을 계획하고 있는 외국인 주민 가정의 아이들이다. 외국인 주민 가정이 늘어가면서 다양한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 발견된다. 대부분의 아이는 부모 그늘에서 생계와 돌봄과 교육을 받지만 때로 그 내용과 질이 위태위태한 아이들이 있다. 물론 한국 국적의 아이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다. 외국인 가정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외국인 가정의 아이들은 도울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공적인 지원이 제한된다. 국민이 아니니 생계나 주거급여 같은 기초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다. 나도 국민의 한 사람이니 외국인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넘어간다. 자국에 땅이 있는지 집이 있는지 그건 또 어찌 알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지나가려 해본다. 아이들도 우리 곁을 그냥 스쳐 지나가면 문제가 없으련만 아이들이 머문다. 더 길게 더 심각한 상황으로.
그럴 때 맞닥뜨리게 되는 질문이 있다. ‘왜 우리가?’ 부모도 무심하고 표나게 해결되는 것도 없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만 같은데, 게다가 국민도 아닌데 ‘왜 우리가?’
가족에 대한 책임을 가족이 알아서 지라고 하는 것은 분명 야만적이라고 여겼는데 국적 앞에서 흔들린다. 아무나 세계시민이 되는 게 아닌가 보다. 흔들리면서도 아이들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 인생에 행복한 기억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기 때문이다. 이주민의 서러운 기억까지 보태서 상한 영혼으로 성장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들이 정붙이고 깃들 만한 곳, 다리 뻗고 마음 뒹굴 만한 곳. 누가 만들 수 있나? 곁에 있는 사람의 몫 우리 몫인가 보다. 괜히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