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매체 “中 미소외교의 등장은 러시아에 대한 불신 때문”

지난해 12월말, 중국 베이징의 외교부 기자회견장에서 외교부 언론담당 간부들과 외국 언론 기자들간의 교류 모임이 열렸다. 평소같으면 삼엄한 표정을 풀지 않던 왕원빈 대변인, 마오닝 대변인의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고 한다. ‘전랑(戰狼)외교관’으로 유명한 자오리젠 당시 대변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중국의 외교적 태도가 ‘전랑외교’(성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공세적 외교 방식)에서 서방 국가에 유연한 모습을 보이는 ‘미소외교’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로 소개한 장면이다. 신문은 이같은 변화가 러시아에 대한 불신, 러시아 외에는 외교적 밀착을 가능한 주요 국가가 없다는 현실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을 2일 내놨다.

지난달 자오리젠이 국경해양사무국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외교 방식 변화의 상징적 장면으로 해석된다. 2020년 대변인으로 취임한 그는 외교 관계에서는 보기 드문 위압적 발언을 반복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후베이성 우한시에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봄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미군이 우한으로 들여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친강 외교부장의 행보에서도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그는 해가 바뀌자 가장 먼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통화하고 “솔직하고 건설적인 대화에 감사하다. 밀접한 협력관계를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신문은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는 미소외교 등장의 이유를 중·러 관계에서 찾았다. 중국공산당 관계자는 신문에 “시진핑 지도부의 러시아에 대한 불신이 높고 미국, 유럽과의 긴장완화를 통해 외교적 균형을 잡으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후 양국 간에 벌어진 일련의 일들이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불신을 조장했다는 게 신문의 분석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사전에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다. 전쟁이 시작되고 러시아 편을 들면서 서방의 경제제재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중국을 서방을 대체할 자원수출 대상국으로 삼아 전쟁 비용을 조달했고, 중국과의 우호관계 덕분에 국제적인 고립도 면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중국 내에서는 “러시아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불만이 퍼지고 있다는 게 신문의 설명이다.  중앙아시아를 무대로 한 중국, 러시아간 알력도 벌어지는 상황이다. 신문은 “시 주석이 지난달 6일 세르다르 베르디무함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과 만나 양국 관계를 에너지 전략의 파트너로 규정하며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였다”며 “투르크메니스탄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쟁 개시 후 방문한 국가 중 하나로 내심 중국의 접근을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중국 국영 해운사 중국원양해운은 최근 러시아산 석유의 수송계약을 거절하기도 했다.    

 

신문은 “중국, 러시아의 밀월은 러시아 말고는 가깝게 지낼 나라가 없는 중국 외교의 냉엄한 현실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며 “미소외교에는 이런 위태로움이 어른거리도 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