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은 대학교수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수년간 반복 범행으로 입시 제도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또 민정수석으로서의 직무를 저버리고 정치권 인사들의 구명 청탁에 따라 감찰을 중단시켜 죄질이 불량하고 죄책이 무겁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1부는 3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에 대해 주요 공소사실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하며 이같이 질타했다. 다만 자녀 입시비리 등과 관련해선 “(아내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범행을 주도했으며 조 전 장관은 배우자로서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아들·딸 입시비리 사실상 전부 유죄
◆감찰 무마 유죄… 사모펀드 관련 무죄
조 전 장관이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을 무마했다는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는 유죄를 받았다.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당시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과 함께 유 전 부시장과 관련한 감찰을 중단한 것이 지휘·감독권을 남용해 특별감찰반 직원의 권리 행사를 방해한 것이라고 봤다. 감찰과 관련한 조 전 장관의 지휘·감독권 행사는 그 위법·부당의 정도에 비춰 볼 때 직권을 남용한 것이라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조 전 장관이 당시 금융위원회 관계자들에게 직권을 남용해 감찰 등 권리 행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는 무죄로 판단됐다. 재판부는 “권한을 남용해 금융위 관계자에게 ‘유재수를 징계나 감찰 없이 단순 인사 조치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금융위의 징계권 등 권리행사가 방해된 결과가 발생했다고 인정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조 전 장관이 민정수석 취임 당시 공직자윤리법상 백지신탁 의무를 어기고 재산을 허위 신고한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 판단이 나왔다.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이 정 전 교수의 주식 차명 취득 사실과 2차 전지업체 WFM의 실물주권 취득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조 전 장관은 이날 실형이 선고되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인 뒤 다시 천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피고인석에 함께 있던 정 전 교수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조 전 장관은 이날 선고 공판이 끝난 뒤 “2019년 법무장관 지명 당시 검찰, 언론, 보수 야당은 내가 사모펀드를 통해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다고 십자포화를 퍼부었다”며 “하지만 사모펀드에 대해선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배우자인 정경심 교수도 관련 혐의에 대해 거의 모두 무죄를 받았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이 선고가 끝난 뒤 법원을 나오자 출입구 근처에 모여 있던 지지자들은 “조국은 무죄다”, “조국 수호”, “힘내라 조국” 등의 구호를 외쳤다.
◆서초동선 “조국 수호” 광화문선 “조국 구속”… 3년 전 대한민국을 둘로 갈랐던 ‘조국 사태’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반년가량 앞둔 2019년 9월, ‘조국 사태’는 대한민국을 둘로 나누었다.
당장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이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전쟁터였다. 조국 전 장관의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야당 법사위원들은 자녀 입시비리·사모펀드 횡령 의혹 등을 검증하기 위해 조 전 장관 배우자인 정경심 교수와 자녀를 직접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은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증인 채택을 거부했다. 증인 합의부터 불발되며 인사청문회 개최가 어려워지자 조 전 장관은 민주당 도움을 받아 국회에서 자신을 향한 의혹에 직접 해명하는 기자간담회를 여는 등 여론전에 나서기도 했다.
시민사회도 반으로 나뉘었다. 조 전 장관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자녀 표창장 위조, 논문 1저자 등재 등 ‘스펙 품앗이’를 한 조 전 장관 부부를 두고 ‘조국 캐슬’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또 조 전 장관이 기득권을 비판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썼던 글들을 묶어 ‘조만대장경’이라는 풍자도 나왔다. 반면 조 전 장관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검사 등 기득권이 개혁을 막으려 무차별적 수사를 벌였다는 주장을 했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 반포대로는 ‘조국 수호’를 주장하는 진보 단체가, 광화문 앞은 ‘조국 구속’을 외치는 보수 단체의 집회가 매주 이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인사청문회가 열렸지만, 청문회 당일 압수수색이 시작되며 검찰 수사가 본격화했다. 조 전 장관은 이후 재임 35일 만, 후보자 지명 66일 만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사퇴 의사를 표하며 “검찰 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했지만, 그의 지명을 두고 ‘국론 분열의 불쏘시개’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듬해 총선에서 민주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완승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잇따른 장외투쟁 등으로 대안 없는 정당 평가를 받으며 103석에 그쳤다. 총선 승리로 “조국 사태에 대한 평가는 끝났다”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조국 사태’는 두고두고 민주당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조 전 장관 옹호를 그만두는 등 ‘조국의 강’을 건너자는 의원들에게 ‘좌표 찍기’가 횡행하며 ‘문자 폭탄’이 쏟아졌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3일 기자들과 만나 “사법부가 엄격한 증거에 따라 유죄를 선고한 것으로 보인다”며 “재판에는 진실과 팩트가 제일 중요한 것이지 무슨 주장이나 진영 논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사필귀정’이라는 말도 아깝다”며 “조 전 장관은 오늘의 결과를 부디 엄중히 받아들이고 먼저 국민께 진심으로 사죄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