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전당대회를 한 달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안철수 후보에 대한 ‘친윤’계 견제가 과도할 지경이다. 특히 지난 6일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전날 이진복 정무수석을 국회에 보내 안철수 의원에 엄중히 경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히며 사실상 대통령이 직접 정리에 나섰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비윤’계는 대통령이 당무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대통령은 당의 중요한 1호 당원”이라며 “당에 대한 권한 행사는 당무개입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 후보가 선두에서 밀릴 때마다 윤 대통령의 전대개입 논란이 반복되자, 여당 내에서도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선 중진인 서병수 의원은 “대통령실 관계자라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전당대회에 끌어들이다니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최재형 의원은 “대통령 주변 인사들까지 누구는 대통령이 지원하지 않는다, 누구와는 함께 갈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을 쉽게 쏟아내는 것은 당에도 대통령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웅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교 꼴등 윤핵관이 1등 되는 법’이라며 “1등을 죽인다. 다음 1등을 죽인다. 다다음 1등을 죽인다”라고 썼다.
대통령이 전당대회 등 당무에 개입하는 것이 ‘민주주의 룰’을 훼손한다는 지적은 헌법과 선거법에 따른다. 공무원의 지위와 신분을 규정한 헌법 제 7조 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돼 있다. 공직선거법 9조1항은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단체포함)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돼 있으며 여기에는 대통령의 정치중립 의무도 포함된다.
대통령에게도 정치적 표현 자유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은 ‘정치자유보다 정치중립이 우선’이라는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헌재는 2008년 노무현 대통령이 ‘개인으로서 가지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았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헌법소원 사건을 기각했다. 당시 헌재는 “대통령은 국정의 책임자이자 행정부의 수반이므로 공명선거에 대한 궁극적 책무를 지고, 공무원들은 인사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의 정치성향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하면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높다”고 했다.
◆나경원, 유승민, 안철수…윤심에 내쳐진 이들
윤 대통령도 지난해 9월 출근길 문답에서 “대통령으로서 당무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는 이준석 전 대표의 비대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으로 국민의힘 내부 혼란이 계속되던 때다.
하지만 윤 대통령 말과 달리 당무개입 논란은 계속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권성동 전 원내대표와 주고받은 텔레그램 문자에서 이준석 전 대표를 겨냥해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고 해 파장을 일으켰다. 윤 대통령은 또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 장차관급 고위 관료와 대통령실 주요인사들을 대동하거나, ‘윤핵관 4인방’과 따로 관저 만찬을 갖기도 했다.
특히 국민의힘 새 지도부를 뽑는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윤심’ 후보가 1위에서 밀려날때마다 대통령실이 나서서 1위 후보를 주저앉히는 일이 반복되며 전대가 ‘윤심 후보 찾기’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초반 국민의힘 당대표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전 의원은 지지층에게 1위 후보로 뽑혔다. 당대표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던 나 전 의원이었지만, 윤 대통령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에서 그를 해임하며 반감을 드러내자 급속도로 지지층이 빠져나갔다. 이후 ‘해임이 윤 대통령 본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나 전 의원에게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직격’으로 반박했고 이는 결국 나 전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이어졌다.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1위를 고수하던 유승민 전 대표 역시 ‘당원투표 100%’ 룰 개정으로 배제됐다. 이 역시 윤 대통령 의중에 따른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유 전 의원은 당시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대통령 명령에 따라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관계자)들이 유승민 하나 죽이려는 폭거”라며 윤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대통령실이 최근 안 의원 측근인 김영우 전 의원을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직에서 해촉한 것 역시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은 대통령 직속 기구 위원이 특정 후보 캠프에서 활동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이유를 댔지만, 나 전 의원 불출마 이후 당대표 지지율 1위로 올라선 안 의원을 견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전대 참여 의사까지 밝힌 윤 대통령
윤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당 지도부 오찬에서 오는 3월8일 국민의힘 차기 전당대회에 참석하겠다고 밝혀 당무개입 논란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당시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오찬 직후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당원들이 모이는 좋은 축제이니 전당대회에 꼭 참석하시겠다는 약속을 해주셨다”고 전했다.
관례로 대통령이 여당 전대 참석할 때는 하루 전에 그것도 ‘엠바고’로 알려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전대 참석 의사를 한달이나 미리 공개함으로써 특정 후보를 밀어주는 모습으로 비춰져 선거 공정성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YTN 라디오에서 “(대통령이)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것에 따라서 표가 확확 왔다 갔다 한다”고 말했다. 이언주 전 의원은 최근 전대 최고위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대통령의 당무 개입은 이제 대놓고 행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통령 여당 전대 참석은 주로 보수정권에서 이뤄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전대에 참석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친이계’에 힘을 실어주며 세를 과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내 이뤄진 2014년과 2016년 새누리당 전대에 모두 참석해 특정 후보를 지원사격했다는 눈총을 받았다. 탄핵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 공천 개입 혐의가 인정되며 징역 2년형을 확정받기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하지 않고 영상 축사만 보냈다.
◆안철수 몸 낮췄지만, ‘대통령실 개입’ 비판 계속
안 의원은 ‘대통령실발 메시지’가 나오자 6일 예정됐던 공개 일정 가운데 라디오 출연을 제외하고 모두 취소했다. 안 후보 측 경선 캠프는 이날 오전 라디오 생방송 출연 이후로 예정된 독거노인및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배식 봉사와 KBS 대담 출연 등 일정을 차후 순연한다고 언론에 공지했다. 안 후보 측은 공지를 통해 “상황점검 및 정국 구상을 위해 일정이 조정됐다”고 설명했다.
안 의원은 최근 경선 과정에서 ‘윤안(윤석열-안철수)연대’ 등의 표현을 쓴 것을 두고 대통령실과 공개 갈등을 빚어왔다. 이 정무수석은 “‘안윤(안철수-윤석열) 연대’라는 건 정말 잘못된 표현”이라며 “대통령과 후보가 어떻게 동격이라고 얘기하는 건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을 향한 대통령실 경고에 안 의원은 다소 몸을 낮추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안 의원은 이날 오전 MBC 라디오에 나와 ‘안 후보를 향한 대통령실의 시선에 날이 서 있다’는 지적에 “사실은 정확하게 이해는 되지 않지만 제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실망하셨다면 그건 제가 충분히 제 의사를 반영을, 전달을 제대로 잘 못 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안 의원은 “지금 사실 청와대(대통령실)에서 이렇게 당내 경선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정말 법적으로도 문제가 많고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거듭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