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에 보낸 고종의 선물… 127년 만에 공개

모스크바 박물관서 특별전

1896년 니콜라이 2세 대관식 축하
장승업 작품 중 대작 ‘고사인물도’
조선 공예 정수 ‘흑칠나전이층농’
총 17점 중 5점 9일부터 선보여

조선 고종(재위 1863∼1907) 임금이 러시아 황제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선물 일부가 127년 만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처음 공개된다.

백동향로

1896년 니콜라이 2세 대관식을 위해 보낸 ‘흑칠나전이층농’ 1점, 장승업(1843∼1897)이 그린 ‘고사인물도’ 2점, ‘백동향로’ 2점 등 총 5점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 내 무기고박물관에서 9일부터 4월19일까지 ‘한국과 무기고, 마지막 황제 대관식 선물의 역사’를 주제로 내건 특별 전시가 열린다고 8일 밝혔다.



고종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이듬해인 1896년 2월11일 경복궁을 벗어나 러시아공사관(아관)으로 거처를 옮기고, 민영환(1861∼1905)을 전권공사로 삼아 사절단을 보냈다. 당시 고종이 러시아에 보낸 선물은 총 17점이다. 이 가운데 크렘린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5점이 선을 보인다. 나머지 선물들은 모스크바 국립동양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절단의 일원으로 민영환을 수행해 대관식에 함께 참석했던 윤치호(1866∼1945)의 일기 등을 통해 선물 목록 일부가 언급된 적은 있지만, 실물이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흑칠나전이층농

‘흑칠나전이층농’은 19세기 조선 공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나전은 나무로 짠 가구 등에 전복이나 조개껍데기를 갈아 만든 문양을 오려 옻칠로 붙이는 전통 공예기법이다. 검은 바탕에 화려하면서도 영롱한 빛을 띠는 농은 상하 2층 구조로, 아랫부분에 해, 달, 학, 거북 등 이른바 십장생(十長生)을 나전으로 표현해 새로 즉위하는 황제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있다. 이 농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2020∼2021년 약 2년간 보존처리 비용을 직접 지원해 온전한 복원을 도운 유물이다.

장승업의 그림은 지금껏 학계에 보고된 적 없는 작품이다. 총 4점으로 구성된 ‘고사인물도’는 신화나 역사 속 인물에 연유된 일화를 표현했다. 세로 길이가 174.3㎝에 달하는데, 조선 회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장승업의 작품 중에서도 보기 드문 대작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 ‘취태백도’(醉太白圖) 두 작품만 관람객과 만난다. 각 작품에는 ‘오원 장승업’ 서명 앞에 ‘조선’(朝鮮)이라는 국호가 붙어있다. 장승업 작품 가운데 처음 확인되는 희귀사례로, 작품이 ‘외교 선물’을 전제로 창작됐음을 보여준다.

장승업이 그린 ‘고사인물도’ 가운데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장승업이 그린 ‘고사인물도’ 가운데 ‘취태백도’(醉太白圖).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사각과 원형의 백동향로 2점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의미한다. 황제의 치세를 표상하는 대관식의 취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직선과 유려한 곡선을 조화롭게 융합하고 정교하게 투조했다. 사각 향로 몸체에는 ‘향연’(香煙·향기로운 연기가 서리다), 둥근 향로에는 ‘진수영보’(眞壽永寶·참다움과 장수, 영원한 보물)라는 글자를 새겨 축하 의미를 담았다.

무기고박물관은 원래 1508년 러시아 황실의 무기고로 지어졌으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수도를 이전한 뒤 1806년 박물관으로 조성됐다. 1960년 크렘린박물관에 공식 편입되어 무기나 황실 보석 등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나라 밖 문화재의 보존·복원을 지원하고 이를 전시로 연결해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널리 공유할 수 있는 전시”라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