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30일. 산업통상자원부가 10월1일부터 민수용 도시가스 요금을 메가줄(MJ)당 2.7원 인상한다고 밝힌 보도자료의 마지막 문장이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단가 상승세 지속, 가스공사의 눈덩이 적자 등으로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에도 가스요금 인상으로 인한 서민 부담 가중에 대한 지적은 있었다. 가스 사용이 늘어나는 겨울철이 오면 난방비가 오를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당시 분위기는 난방비보다는 공공기관의 적자 해소에 방점이 찍혔다. 서민 부담을 말하기에 ‘5400원’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가 적었다. 오히려 그동안 공공기관 적자를 방치해둔 전 정부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컸다.
평균의 함정에 빠진 걸까, 아니면 ‘눈 가리고 아웅’이었을까. 지난 1월 난방비는 ‘평균 5400원 인상’이라는 정부 발표를 무색하게 했다. ‘난방비가 평소의 두 배가 넘게 나왔다’, ‘20평형 아파트 관리비가 50만원 가까이 나왔다’ 등 ‘폭탄 피해’ 사례가 쏟아졌다. 전기료 등 다른 에너지 요금을 감안하더라도 정부가 말한 5400원과는 간극이 컸다. 다음 고지서도 걱정이다. 지난달 말 한파를 견디기 위해 한 난방이 요금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난방비 폭탄에 서민들이 아우성치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지난달 26일 정부가 가장 먼저 발표한 대책은 가스요금 할인 가구(160만가구)와 에너지 바우처 지원 가구(117만가구)에 대한 지원을 기존의 2배로 늘리는 방안이었다.
나흘 뒤, 윤석열 대통령은 난방비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 1일 모든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 59만2000원씩을 지원하는 대책을 추가로 내놨다. 에너지 바우처 인상으로 들어가는 예산은 1800억원에 달한다. 차상위계층에 대한 지원책도 결국 거둬들이는 가스요금을 줄이는 것으로, 가스공사가 부담을 져야 하는 부분이다.
대통령은 중산층에 대한 지원도 주문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10가구 중 6가구꼴인 중산층에까지 난방비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재정을 투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유다.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하는데, 이는 정책기조에도 맞지 않다.
정부는 올해 예산을 짜면서 에너지복지 예산 492억원을 삭감했다. 지원 대상은 줄이고 가구당 지원 규모는 늘렸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하지만 가스요금은 올려놓고 에너지복지 예산은 줄여 서민들의 난방비 부담만 늘어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비판이다. 예산을 줄여놓고 난방비 논란이 커지자 다른 예산을 끌어다 쓰는 식이다. 땜질도 이런 땜질이 없다.
공공기관 부채 경감을 위해 들어가는 돈도 혈세고, 서민 지원을 위한 돈도 마찬가지다. 그사이 발생한 사회적 혼란을 고려하면 가스요금을 올려서 얻은 실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당초 가스요금 인상을 발표할 때 겨울철 난방비 부담에 대한 대비책이 함께 논의됐어야 했다. 적어도 ‘5400원 인상’이라는 평균 뒤에 숨지 말고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머리를 맞대는 과정이 필요했다. 전 정부 탓을 하는 것도 그래야 진정성이 있다.
‘난방비 폭탄’은 돌발 리스크가 아니다. 에너지 요금 인상이라는 정부의 정책적 결정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제대로 된 예측조사 없이 일단 저질러 놓고 우왕좌왕이다. 불과 몇 개월 뒤 발생할 리스크조차 예측하지 못하고 정책을 결정할 정도로 무능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