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딸 데리고 열병식 참관한 김정은, 벌써 후계구도 굳히나

북한이 그제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건군절)을 기념하는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어제 “강위력한 전쟁억제력, 반격능력을 과시하며 굽이쳐가는 전술핵 운용부대 종대들의 진군은 무비의 기세로 충전했다”며 “우리의 정규무력은 제국주의 폭제를 완벽하게 제압 분쇄할 수 있는 절대적 힘을 비축한 최강의 실체”라고 보도했다. 최근 한·미 확장억제력 강화 움직임에 맞서 대내외적으로 핵무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다.

 

열병식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전술핵운용부대 등이 등장했다. 선두에 ICBM 화성-17형이 있고, 그 뒤로 중장거리급 미사일을 탑재한 이동식발사차량(TEL)이 2열 종대로 움직이는 모습이 식별됐다. 이어진 1열 종대 행렬에는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ICBM 추정 신무기가 등장했다. 탐지와 추적이 쉽지 않은 고체연료를 사용한 ICBM이 실전배치 단계에 이르렀다면 북핵 위협의 수위는 이전보다 한층 높아진다. 조선중앙통신이 이 미사일을 두고 “최대의 핵공격력을 과시했다”고 한 배경일 게다.

당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 열병식을 계기로 공세적인 대남·대미 메시지를 발신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는데 그냥 넘어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 밤 진행된 국정연설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데다, 미·중 간에 정찰 풍선을 놓고 갈등이 불거진 것을 관망하며 숨 고르기에 나섰을 수도 있다. 더구나 작금의 북한 식량난은 매우 심각한 지경이 아닌가.

열병식에서 신형 ICBM만큼이나 주목을 끈 것은 김 위원장,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열병식에 참석한 둘째 딸 김주애였다. 김주애가 관영 매체 보도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11월 18일 화성-17형 발사 현장 방문 이후 5번째다. 당시만 해도 딸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 인자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연출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후 딸을 향한 호칭은 ‘사랑하는 자제분’에서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격상했고, 심지어 군부 핵심 간부들과 김정은, 김주애, 리설주가 함께 찍은 사진에서 김주애는 한가운데 자리하기도 했다. 후계자가 될지도 모를 딸의 입지를 고려한 김 위원장의 의도적인 행보가 아니고선 설명하기 어렵다. 정부는 4대 세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추이를 예의 주시해야 할 때다. 북한의 대남 핵 도발에 대한 확실한 확장억제력을 확보하고 경계태세에도 빈틈이 없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