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값은 ‘뚝뚝’ 소비자는 ‘감감’… 문제는 유통구조 [이슈 속으로]

도매·체감가격 괴리 ‘이상한 한우시장’

소값 1년새 최대 30%까지 급락
도매가격도 16% 이상 ‘내리막길’
사육마릿수 늘어 과잉공급 영향

축산물, 도축·구분·포장과정 필수
최대 ‘8단계’ 유통비용 50% 달해
실제 소비자 가격은 큰 차이 없어

“도소매가격 연동제 제도화해야”
한우協 “수입산 공급 줄여야” 주장

#. 경북에서 한우 50여마리를 키우고 있는 박모(67)씨는 얼마 전 우시장에 송아지를 팔러 갔다가 되돌아왔다. 소값이 폭락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떨어져 차마 팔 수 없었기 때문. 불과 1년 전만 해도 300만원가량에 팔리던 6개월 된 암송아지가 200만원 밑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 8살, 6살 아이 둘을 키우는 이모(39)씨는 얼마 전부터 아이들 먹일 미역국에 들어가는 소고기를 한우에서 수입산으로 바꿨다. 물가가 무섭게 치솟으면서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생각에서다. 이씨는 “아이들이 먹는 거라 그동안 한우를 사서 썼는데, 갈수록 부담이 커져 미국산으로 바꾸게 됐다”며 “한우값이 폭락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공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설을 앞두고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물 시장을 찾은 시민이 한우를 고르고 있다. 뉴스1

소값이 폭락하고 있다. 1년 전에 비해 많게는 30% 이상 떨어지면서 한우 농가는 아우성을 치고 있다. 빚을 내 소를 키우는 것도 한계점에 달했다는 목소리다. 농민들은 거리로 나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 한 농민이 한우값 폭락에 따른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로 농가 상황은 심각하다.

 

농가는 소값 폭락으로 죽을 지경이라는데, 소비자들은 어리둥절하다. 대형마트나 정육점에서 판매되는 한우값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한쪽에선 폭락을 걱정하고, 다른 쪽에선 여전히 비싸서 못 사 먹는 ‘이상한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도대체 한우 시장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공급 과잉’ 지속… 폭락하는 소값

 

10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올해 한우 사육마릿수는 357만7000마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한우 사육마릿수는 그동안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다. 2015년 276만9000마리던 한우는 지난해(352만8000마리)까지 7년 연속 늘었다. 사육마릿수 증가와 비례해 도축마릿수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도축된 한우는 86만9000마리로, 전년대비 9.4% 증가했다.

 

이 같은 공급과잉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한우 도매값은 내리막을 보였다. 2021년 1㎏당(한우 거세) 평균 2만2667원이던 도매가격은 지난해에는 2만980까지 떨어졌다. 특히 10월 중순 이후에는 공급 증가 상황이 심해지면서 전년 대비 16% 이상 가격이 하락했다.

실제 소값 폭락도 심각한 수준이다. 600㎏ 한우 암소의 산지가격은 지난해(1월 기준) 602만6000원에서 올해 447만3000원까지 하락했다. 637만2000원까지 올랐던 2021년과 비교하면 하락폭이 더욱 크다. 30%가량 폭락한 셈이다.

 

반면, 이 기간 사료값은 급등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우 비육우의 두당 사육비(가축비 포함)는 2021년 992만2700원까지 치솟았다. 2014년(670만7000원) 대비 48%가량 증가한 액수다. 특히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가가 상승하면서 사료값이 급증한 만큼 생산비 부담은 증가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우협회 관계자는 “한우 1두당 생산비는 1100만원에 달하는데 한우 도매가격은 평균 7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향후 수급 상황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육규모가 증가한 영향으로 한우 공급물량은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올해 정점을 찍은 한우 사육마릿수는 내년에도 349만8000마리 수준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다. 올해보다 소폭 줄겠지만, 여전히 평년 대비 13.2% 늘어난 수치다. 결국 내년까지 과잉 공급 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의미다.

◆소값이 떨어졌다고? 소비자 체감은 ‘글쎄’

 

산지 소값과 한우 도매값이 하락하고 있지만, 소비자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괴리의 원인은 무엇보다 유통구조에 있다. 한우 유통과정은 일반적으로 ‘생산자-우시장-도축장-중간도매상-도매상-유통채널-소비자’ 등 6∼8단계에 달한다. 축산물은 농산물과 달리 도축과 부위별 구분·포장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도축비, 인건비 등 유통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한우 소매가격에서 유통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은 50%에 달한다. 소고기 소매가격에서 유통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는 유통비용률은 2017년 49.9%, 2018년 51.2%, 2019년 49.7%, 2020년 49%, 2021년 54%로 매년 50% 전후를 기록했다. 도매가격이 하락해도 유통비가 내려가지 않는 한 소비자가 소값 하락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 지난해 한우 1등급 등심 100g의 평균 소비자가격은 1만553원으로, 전년(1만298원)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나마 올해 1월에는 9741원으로 내려갔지만, 이마저도 평년 기준으로는 4.5% 증가한 금액이다.

 

소비자들의 취향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다.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등심, 안심, 채끝살 등 구이용 제품은 가격 하락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등심의 경우 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8% 수준에 그치기에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다고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형마트나 정육점에서 판매되는 한우 가격이 평소와 다름없이 높게 유지되다 보니 수입 소고기를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소고기시장에서 수입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수급 조절에 가격연동제 대안으로

 

한우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급과잉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농협경제지주 축산경제는 2021년부터 올해까지 7만7000마리를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우 암소 비육지원 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한우협회도 미경산우(송아지를 낳은 경험이 없는 암소) 비육지원 사업으로 2021년부터 최근까지 4만4000마리 이상 암소를 감축했다.

 

한우협회는 과잉공급 해소 차원에서 수입산 소고기의 공급량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 들어온 수입산 소고기는 47만6759t으로 2017년(34만4271t)에 비해 40% 가까이 증가했다. 한우협회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안일하고 미비한 수급 대처 능력의 책임이 크다”며 “지난해 미국산 소고기는 사상 최대의 수입물량을 기록했고, 이로 인해 한우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소비도 촉진시켜야 한다. 한우에서 수입 소고기로 떠난 소비자를 돌아오게 하기 위한 지원책이 필요하다. 이 같은 이유로 한우 도소매가격 연동제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도소매가격 연동제란 도매가격이 떨어지면 소비자가격도 내리고, 반대로 도매가격이 오르면 소비자가격도 올리는 방안이다. 지금처럼 공급량이 늘어 소값이 떨어지면 소비자가 구매하는 소고기값도 하락하게 되는 구조다. 연동제에 따라 소비자가격이 내려가면 소비 확대로 이어져 농가 안정과 소비자 만족이라는 ‘두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농협경제지주 축산경제는 지난해 말부터 농·축협 하나로마트에 도매가격을 반영한 권장 판매값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