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저승사자’도 반독점 소송 패소…‘용두사미’ 美 빅테크 규제 따라가는 정부?

美 FTC, 메타 반독점 소송 敗…빅테크 규제 새 국면 맞을까
메타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연방거래위원회(FTC)가 메타(페이스북)의 기업 인수를 막겠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메타의 손을 들어주면서 아마존·MS·메타·애플·구글 등 ‘5대 빅테크’를 겨냥해 수년간 준비한 미국 정부의 규제 움직임이 수포로 돌아갔다. 지난해 말 5대 빅테크 기업을 규제하는 반독점법 법안들이 미국 상원 통과에 실패한데 이어 ‘빅테크 저승사자’로 불리는 리나 칸 FTC 의장이 밀어붙인 메타 소송에서 패배해 빅테크 규제가 새 국면을 맞이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일각에선 미국의 반독점 규제와 유사한 내용으로 플랫폼 규제에 나선 한국 정부도 “결국 미국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13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은 FTC가 메타의 가상현실(VR) 기업 ‘위딘 언리미티드’(Within Unlimited) 인수를 막아 달라며 제기한 인수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2014년 창업한 위딘 언리미티드는 포브스 등이 선정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히며 VR(가상현실) 기반 피트니스 콘텐츠 앱인 ‘슈퍼 내추럴’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온 바 있다.

 

메타는 자사가 보유한 VR기기 오큘러스와 시너지 효과를 목적으로 위딘 인수에 나섰지만, FTC가 지난해 7월 “메타는 경쟁을 해야지 독점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해 제동을 걸었다. FTC는 메타가 인스타그램 등 스타트업 인수로 SNS 시장에서 독과점 체제를 구축한 것같이 VR 시장에서도 독점 현상이 심화될 것을 우려해 자체 행정심사가 끝나기 전에 법원이 인수 진행을 막아 달라고 요청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지난해 말 재판에서 “이번 인수로 오히려 경쟁을 촉진하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WSJ는 “메타는 슈퍼 내추럴과 성격이 비슷한 피트니스 앱을 이미 보유하고 있지 않아 향후 독점 문제로 불거질 수 없었다”며 “법원은 오히려 메타가 VR 피트니스 앱에 필요한 피트니스 강사 보유 등 사업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컬럼비아대 교수 출신인 칸은 2021년 연방위원장 취임 이후 빅테크 기업에 각종 칼날을 겨눠왔다. 블룸버그는 “강성 규제론자인 리나 칸의 패배는 빅테크 규제에 큰 손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빅테크 규제 움직임은 이미 지난달 말 좌초 위기를 맞았다. 미국 민주당과 백악관 주도로 수년간 추진한 핵심 반독점 법안 대부분이 상원을 통과하지 못해 폐기됐다. 플랫폼 기업의 자사 우대를 제한하는 ‘미국 온라인시장의혁신 및 선택에 관한 법’, 경쟁 플랫폼 간 인수합병을 제한한 ‘플랫폼의 경쟁 및 기회에 관한 법률’, 애플·구글을 겨냥해 자사앱 마켓만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오픈 앱 마켓 법’ 등 5개 법안이 모조리 무산됐다. 법안이 무산되자 반독점 법안을 주도한 미국 백악관 팀 우(WU) 국가경제위원회대통령 기술경쟁정책특별보좌관은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미국의 빅테크 규제가 무산된 이유는 플랫폼이 주는 소비자 혜택이 독점으로 인한 폐해보다 더 크다는 여론이 확산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마존은 협력사들에게 빅테크 규제에 반대하는 서명을 해달라고 나섰고, 구글과 애플은 “혁신을 막고 막대한 보안 손실을 야기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이들 빅테크 기업은 자신들이 가입한 무역협회 ‘체임버 오브 프로그레스’를 통해 백악관에 서한을 보내 “바이든 행정부에서 빅테크 산업에 대한 탈규제와 일자리 지원 진흥 정책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밴더빌트대의 레베카 앨런스워스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법 집행을 강화하려는 미 행정부와 FTC에 타격을 입혔다”고 말했다. 미국이 정권 초와 비교해 적극적으로 빅테크 규제에 나서기 어렵다는 뜻으로 보인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 메타 제공

 

한편 검색·광고·SNS 등 분야에서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70~90%대 점유율을 확보한 미국 빅테크 기업들과 비교해 국내는 규모가 더 작을뿐더러 내수시장에 치중된 온라인 플랫폼들이 대부분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인 아마존과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의 2021년 합산 매출은 1조3792억달러(1852조원)로, 우리나라 한 해 국내총생산(GDP·1799조원)보다 크다. 네이버, 카카오, 두나무 등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지난해 IT기업집단으로 공시한 우리나라 7개 기업의 합산 매출은 미국 빅테크 기업 매출의 2.9%에 불과하다. 시장점유율 60%대를 넘보는 아마존과 달리, 국내 유통시장은 아직 독과점 사업자가 없다.

 

미국과 국내 사정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한국 정부는 수년 전 미국이 추진한 플랫폼 규제의 초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플랫폼 기업의 자사 우대 등을 규제하는 심사지침을 올 초 발표한 바 있는데, 이는 미국 상원에서 무산됐던 것과 유사하다.

 

공정위는 올 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빅테크 기업의 인수합병 심사를 일반 심사로 전환해 엄격히 들여다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까지는 신고된 기업결합 중 경쟁 제한 우려가 없으면 신고 내용의 사실 여부만 따지고 있다. 앞으로는 인수합병으로 경쟁을 제한하는 독과점 등이 우려되면 심사 절차를 강화해 ‘문어발 확장’을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플랫폼의 기업 인수합병 심사 강화는 자칫 메타의 위딘 인수합병 저지에 실패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같은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독과점과 무관한데도 시장 질서 파괴를 우려한 무리한 인수합병 심사는 오히려 스타트업 M&A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위가 미국의 플랫폼 규제론을 추종하고 있다”며 “기업결합 심사기준 강화는 스타트업 생태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일자리 창출 억제와 소비자 후생에 부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판 ‘플랫폼 독점법’을 추진하는 움직임에 대한 비판도 커질 전망이다. 공정위가 플랫폼 심사지침 등 행정규제와 별개로 플랫폼 법제화 여부를 검토하는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입법 추진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한 데 대해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플랫폼의 법적 규제는 글로벌 경쟁력 상실과 소비자 타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