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차기 대통령 만난 마크롱 "30년 전 고마웠소"… 왜?

뮌헨 안보회의 참석 계기로 인사 나눠
1993년 옛 유고 내전 때 체코군 지휘
몰살 위기 처했던 佛 장병 53명 구출
마크롱 "두 나라 유대 더욱 강화할 것"

“30년 전 우리 군인들을 구해줘 고맙습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 당선인과 마주한 자리에서 과거 그가 프랑스 측에 베푼 은혜를 거론하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마침 두 사람이 만난 도시가 프랑스·체코 양국에게 모두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 있는 독일 뮌헨이란 점에서 새삼 옛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17일(현지시간) 뮌헨 안보회의 참석을 계기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 당선인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 SNS 캡처

뮌헨 안보회의에 참석 중인 마크롱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체코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회의에 동참한 파벨 당선인과 만났다. 체코군 4성장군 출신으로 체코 육군참모총장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사위원장을 지낸 파벨 당선인은 프랑스에선 ‘은인’이자 ‘영웅’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옛 유고슬라비아 해체 후 여러 민족 간에 내전이 벌어졌던 1993년 파벨 당선인은 보스니아 지역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의 일원인 체코군 부대를 이끌었다.

 

그때 역시 유엔 평화유지군 임무를 수행하던 프랑스군 장병 53명이 나토 등 서방에 적대적인 세르비아 군대에게 포위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인종청소’로 악명 높았던 세르비아 군대가 프랑스군을 몰살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들을 구출하기 위한 체코군의 작전이 전개됐다. 그 작전을 지휘한 인물이 바로 파벨 당선인이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파벨 당선인에게 “1993년 옛 유고에서 총격을 받고 있던 프랑스 군인 53명을 구출한 당신의 영웅적 행위를 떠올리며 우정과 존경을 느낀다”고 인사했다. 이어 “체코와 프랑스를 하나로 묶는 유대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1차 세계대전 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며 독립한 체코는 1930년대 이웃의 강대국 독일에 위협을 느끼며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다. 히틀러의 나치가 정권을 잡은 뒤 독일은 1938년 체코에 “독일계 주민이 많이 사는 주데텐란트 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군대를 보내 침략하겠다”고 협박했다.

 

체코는 즉각 동맹국인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국민들 사이에 반전(反戰) 여론이 높았던 프랑스는 주저했다. 독일과 전쟁이 나면 동원될 처지인 젊은이들은 “파리도 아니고 프라하를 위해 피를 흘릴 순 없다”고 외쳤다. 다른 유럽 강대국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1938년 9월 뮌헨회의에서 만난 유럽 강대국 지도자들. 왼쪽부터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 독일 독재자 히틀러,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 이들은 전쟁을 하는 대신 약소국 체코를 희생시키는 ‘가짜 평화’를 택했다. 위키피디아

결국 1938년 9월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 그리고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두 독재자까지 4대국 정상이 독일 뮌헨에 모여 회의를 연다. 이들은 ‘체코가 독일에 주데텐란트 땅을 양보하는 것으로 사태를 마무리하자’는 결론을 내린다. 정작 당사자인 체코는 논의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배제됐다. 프랑스는 “체코가 양보하지 않으면 동맹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결국 모든 것이 히틀러의 의도대로 되었다. 이듬해인 1939년 초 체코의 남은 영토마저 독일에 병합했고, 체코라는 나라는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해 9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이듬해인 1940년 6월에는 프랑스마저 함락했다. 뮌헨회의는 허약하기 그지없었던 프랑스·체코 동맹의 파멸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