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구멍 뚫어야 '대한난민' 된다…우크라 출신도 난민 인정 사례 無

韓 난민 인정률 세계 최하위
1차 심사까지 평균 23.9개월
우크라·러 출신 사례도 없어
러시아 인은 더 엄격한 잣대
정부 "병역기피 난민 사유 안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700만명이 넘는 전쟁 난민이 발생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난민에게 장벽이 높은 나라다. 전쟁을 피해 한국에 머물고 있는 우크라이나인 대부분은 난민이 아닌 ‘인도적 체류자’의 신분이다. 징병을 피해 출입국관리소의 문을 두드리는 러시아인에게는 난민 심사조차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난민신청 1만1539건 중 난민 지위를 인정한 것은 175건이다. 전체 신청 건수의 2%에 못 미친다. 우리 난민법은 유엔난민협약에 따라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정치적 견해 등 5가지 이유로 박해를 받고 출신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에 한해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 심사는 훨씬 까다롭다. 난민법 시행령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안전 또는 사회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박해의 가능성이 없는 안전한 국가 출신이거나 안전한 국가로부터 온 경우 △경제적 이유로 난민 인정을 받으려는 경우 등에 대해서는 법무부 장관이 난민 심사에 회부하지 않을 수 있다.

 

그나마도 심사를 받기까지는 한 세월이다. 인권단체인 ‘난민인권센터’가 법무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난민 신청자가 1차 심사 결정을 받기까지 평균 23.9개월이 소요됐다. 아직까지 우크라이나 또는 러시아 출신이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없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법무부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법무부는 러시아의 침공 직후인 지난해 2월 국내 체류 우크라이나인들을 대상으로 인도적 특별체류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학업 활동이 끝난 유학생이나 단기 방문자 등 합법 체류자 3843명을 대상으로 국내 체류를 희망할 경우 임시 체류자격으로 변경해 국내 체류와 취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동포와 가족 등을 대상으로 비자 신청서류를 간소화하는 등 발급 절차를 간소화하기도 했다.

 

이와 달리 강제징집을 피해 한국으로 온 러시아인에게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고 있다. 법무부는 “단순 병역기피는 난민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난민 신청 자체를 받지 않는다.

 

다만 최근 이들 러시아인에게도 난민 신청 자격이 있다는 판결이 나온 바 있다. 인천지법은 지난 14일 러시아인 3명이 법무부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장를 상대로 낸 난민 인정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에서 2명에게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A씨 등 2명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난민 심사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징집거부가 정치적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면 박해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며 “난민 심사를 통해 구체적인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