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7일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2월호’에서 국내 경기가 둔화 국면을 맞이했다고 진단했다. 고물가 속에 내수 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부진 및 기업심리 위축이 지속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경기둔화를 인정한 건 2020년 코로나19 충격 이후 처음이다. 작년 6월부터 ‘경기둔화 우려’라는 표현을 썼는데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그만큼 경기한파가 혹독하다는 의미다.
주요 경제지표는 온통 잿빛이다. 작년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4% 줄어 2년6개월 만에 역성장했다. 1월 수출이 1년 전보다 17% 가까이 격감했고 무역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5.2% 올라 전월보다 상승폭이 더 커졌다. 전망도 어둡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0.3%포인트 낮춘 데 이어 한국은행도 0.1∼0.2%포인트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잠시 잦아드는 듯했던 미국발 긴축 공포까지 다시 고개를 든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예상외의 고용·소비 호조 속에 물가불안이 커지자 다음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달러는 강세로 돌아섰고 원·달러 환율도 지난 17일 장중 1300원을 돌파했다. 환율 급등은 원유 등 에너지 수입가격을 끌어올려 물가를 자극하고 무역수지도 악화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이러다 정부가 손쓰기 힘든 저성장·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 늪에 빠져드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제 경기침체와 수출부진의 반전을 모색할 수 있는 국가 산업·통상 전략을 짜는 게 시급한 과제다. 반도체가 전체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대중 수출 비중이 4분의 1이나 되는 터라 이대로라면 한국경제는 천수답 신세를 벗어날 길이 없다. 반도체 외에 해외건설, 관광·콘텐츠, 디지털·바이오 등 다른 수출품목을 발굴하고 수출시장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인도, 중동, 유럽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 재정과 통화 정책의 정교한 조합도 중요하다. 한은은 물가·금융 불안을 차단하기 위해 선제적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한다. 한·미 간 금리 격차가 1.25%포인트까지 벌어졌는데 오래 방치하면 자본유출과 환율불안을 자극할 위험이 크다. 자칫 물가도 경기도 다 놓칠 수 있다. 대신 정부는 고금리 충격에 취약한 서민과 자영업, 영세기업의 고통을 덜어주는 대책을 빈틈없이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