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개띠’ 이철(65) 워크앤런 대표에게 2002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해서가 아니라 인생의 항로를 틀게 한 ‘이슬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그해 어느 날 새벽, 집에 오다 길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극도로 싫어하는 쥐인 줄 알고 서둘러 지나치려 했는데 강아지 소리가 났다. 뭔가 싶어 발로 툭툭 치니 새끼 시추 한 마리가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다. 바로 집에 데려와 돌봤다. 선천적 기형으로 뒷다리를 쓰지 못한 채 새벽이슬을 맞고 버려져 있던 녀석에게 ‘이슬이’란 이름도 지어줬다. 원래 키우던 개 두 마리와 달리 몸을 바닥에 끌고 다니는 이슬이 모습은 애처로웠다. 그렇게 4년쯤 지났을까. 일본 여행 중 지인을 따라간 반려동물 전람회에서 장애견을 위한 조립식 휠체어가 눈에 들어왔다. 50만원이 넘었지만 바로 사와 이슬이 몸에 달아줬다. 녀석은 처음엔 어색한지 멀뚱히 섰다가 다른 두 마리가 뛰어가니 신나게 쫓아다녔다. 스스로도 놀랐는지 뛰면서 한 번씩 뒤돌아보는데, 그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순하고 예뻤던 이슬이는 휠체어를 잘 타고 다니다 8살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주인 잃은 휠체어를 필요로 하는 강아지에게 주려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자 사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중 ‘우리 아이에게 꼭 필요한데 살 여유가 없다. 도와줄 수 없겠느냐’는 쪽지를 보낸 경기지역 한 유기견 보호소에 기증했다. 가 보니 아픈 개가 한 마리 더 있어 일본에서 새 휠체어를 사와 건넸다.
그 일을 계기로 일본에 드나들 때마다 장애견 휠체어를 사 도움이 필요한 유기견 보호소에 기부했다. 장애로 못 걷던 개들이 맘껏 걷고 달릴 수 있게 되면서 짓는 표정이 너무 좋았고 기부하는 게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1년가량 그리하니 경제적 부담도 되고, 비슷한 장애로 고통을 겪는 개가 정말 많아 이렇게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직접 개 휠체어를 만들어 도와주자.’
―휠체어를 실제 만드는 건 쉽지 않았을 텐데.
“2010년쯤인데, 마침 초등학교 후배가 노인들이 유모차처럼 끌고 다닐 수 있는 ‘실버 휠체어’ 제작 공장을 운영해 찾아갔다. 일본과 미국 등에서 구입한 장애견 휠체어를 보여주며 ‘만들 수 있을까’ 물었더니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주말마다 경기도 용인 공장에 가 6개월 정도 열심히 기술을 배웠다. 그 와중에 사업이 꼬여 건물도 날리는 등 큰 손해를 보곤 ‘강아지 휠체어나 만들어주고 봉사하며 살자’는 생각이 들더라.”
―사업도 접고 혼자 그 일을 하겠다니 추진력이 대단한 것 같다. 가족 반응도 궁금한데.
“친한 지인이 빌려준 사무실에 작업실을 차린 후, 장애견 보호자들에게 온라인 쪽지를 보낸 뒤 연락이 오면 휠체어를 만들어 보내줬다. 유기견 보호소에서도 부탁하면 들어주고. 정말 많이 만들어 기부했다. 재미 붙여 한 일인데 사람을 변화시키더라. ‘골프 칠 돈이면 아픈 강아지를 더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엄청 즐기던 골프도 끊다시피 했다. 아내는 무척 반겼다. ‘전에는 눈빛도 성격도 날카로웠던 사람이 항상 웃음기 띤 얼굴로 하루 있었던 일을 즐겁게 얘기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다’면서. 아이(개)들이 너무 고마운 이유다.”
―워크앤런(Walk and Run)은 어떻게 설립한 건가.
“닉네임이 ‘휠체어 아저씨’였는데 온라인 반려동물 카페를 중심으로 소문이 퍼져 ‘비용을 줄 테니 우리 아이 것도 만들어달라’는 의뢰가 쏟아졌다. 휠체어가 필요한 개는 많은데 국내에선 구하기 힘드니까. 유기견 보호소 기부용 휠체어 재료값에 보태려 7만원 정도 받고 만들어줬는데, 일각에서 ‘세금도 안 낸 채 판매하면 되냐’고 비난하는 얘길 들었다. 수익을 내려 한 건 아니지만 딱히 틀린 얘기도 아니었다. 그동안 감당이 안 될 만큼 ‘도와달라(무료 기부해달라)’는 사람이 많아 비공개적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힘들게 작업했는데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정식으로 사업자등록하고 나눔 방식으로 운영하자고 결심한 뒤 워크앤런을 차렸다. 이름엔 반려동물이 마음껏 걷고 달리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의족과 보행보조기까지 만들게 된 계기는.
“휠체어 제작 원가와 직원 임금 등 운영비를 빼고 남는 수익은 유기견 보호소를 위한 무료 휠체어 나눔에 썼다. 어느 날 주인한테 뒷다리 무릎 아래를 잘려 구조된 진돗개를 만나 의족 제작업체에 의뢰하니 200만원이 훌쩍 넘어 엄두가 안 났다. 일단 휠체어를 만들어준 뒤, 임시방편으로 테니스공에 쿠션을 넣어 다리에 부착해줬다. 그조차도 기뻤는지 열심히 걷던 개는 곧 그 상태로 해외에 입양됐다. 그 아이만 생각하면 마음이 참 아프다. 지금은 얼마든지 만들어줄 수 있는데 막상 한국에 없으니. 얼마 후 앞다리가 꺾인 개가 구조돼 다리를 잡아주는 보조기를 의뢰했더니 그것도 너무 비쌌다. 부자 아니면 아픈 개는 돌볼 수도 없는 현실에 너무 화가 나 직접 만들기로 한 것이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이 대표는 의족과 무릎 등 보조기 관련 공부를 하러 다시 대학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얘길 들은 정형외과 의사 친구가 현장에서 실무를 배우는 게 훨씬 낫다며 의족·보조기 업체 대표를 소개해줬고, 이 대표는 1년 가까이 매일 저녁 찾아가 개인 지도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봉사·후원활동을 하다 가까워진 유기견 보호소들을 통해 다리가 부러지거나 틀어진 수백 마리 유기견을 소개받아 실습하면서 빠른 속도로 기술을 연마했다. 갖가지 실패를 거울 삼아 어떤 상태의 반려동물이든 적합한 의족과 보조기를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워크앤런은 현재 의족과 무릎·발목·경추·척추 보조기를 제작해 판매하거나 기부한다.
―일본에도 스승이 있다는데 뭘 배웠나.
“일본 제품이 우리 것보다 더 섬세했다. 몇 명 안 되는 일본 장인을 수소문 한 뒤 찾아가 가르쳐 달라고 간곡히 사정했다. 몇 차례 금요일 저녁에 날아가 주말 동안 배운 뒤 월요일 아침에 돌아왔다. 일본 장인들은 보조기 하나를 만들 때도 엄청 정성을 들였다. 내가 보기엔 완성도가 높은 제품인데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만들더라. 현지 스승이 ‘자네가 필요한 물건을 살 때 하자가 있어도 사는가. 강아지라고 다르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충고할 때 느낀 바가 컸다. 뭐든지 손으로 제작하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이후 어떤 자재든 품질과 안전성이 우수한 것을 쓰고 가급적 손으로 작업한다.”
―그만큼 제작비용이 오르고 제품 가격 인상 압박을 받지 않나.
“그래도 초창기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등 최대한 저렴하게 판매하려고 노력한다. 장애 동물을 돌보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인데 보호자들이 휠체어나 보조기 구입에 부담을 느끼게 해선 안 된다. 제품 성능과 품질을 향상하는 데 많은 아이디어를 주는 보호자들이 고마워서라도 비싸게 받을 수 없다. 17살 이상 노령 개에게는 ‘경로 우대’로 5만원 할인해준다.(웃음) 가족 같은 아이를 데리고 온 보호자에게 ‘얘가 얼마 못 사니 깎아줄게요’ 하는 거랑 ‘경로 우대 해드릴게요’ 하는 거랑은 완전히 다르잖나.”
―지난해 대구와 광주에 이어 올해 제주에도 직영점을 낸다고. 수요가 많아 ‘함께하자’거나 ‘투자하겠다’는 제의도 들어올 것 같은데.
“지방에서 오는 고객도 많은데 사람은 괜찮을지 몰라도 동물들은 힘들다. 대부분 긴 시간 차를 타면 울렁증과 스트레스 등으로 죽을 맛이 된다. 시간과 거리 단축을 통한 동물 보호와 주인의 수고 및 교통비 경감 등을 고려해 직영점을 낸 거다. ‘투자할 테니 사업을 키워보자’거나 ‘비싸게 인수하겠다’는 식의 제안도 많이 오는데 그럴 때마다 ‘돈 벌려고 해서도 안 되고, 아무나 해도 되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딱 잘라 거절한다. 문재인정부 당시 청와대에 초청받았을 때 정부가 도와주겠다는 것도 거부했다. 대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정부는 반려동물을 학대하거나 유기하는 사람, 돈벌이에 혈안인 강아지 공장 엄단 등 우리가 못하는 일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동물 고객들은 어떤 문제로 오고, 다룰 때 특히 신경쓰는 점은 뭔가.
“(주로 개들인데) 실내 마루·대리석 바닥 등 인간이 만든 현대적 환경에서 지내다 슬개골이나 십자인대 파열로 탈구된 경우가 많다. 또 목 경추 디스크 쪽 신경계 손상으로 다리가 마비되거나 사고와 못된 주인으로 인해 다리가 절단된 아이 등 다양하다. 고양이, 다람쥐 등이 올 때도 있고. 동물은 말을 할 줄 모르는 데다 경계심이 많고 예민해 교감부터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먼저 품에 안아보고 놀아주면서 아이들이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마음 놓고 평소처럼 서거나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야 몸에 잘 맞는 제품을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기 전과 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고, 바람은 뭔가. 1000만명이 넘는다는 국내 반려인에게 당부할 게 있다면.
“그 전까진 돈을 좇느라 행복한 게 뭔지도 모른 채 살다 이 일을 하면서 진짜 행복을 알게 됐다.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이기적으로 나만을 위해 살아온 것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도움되는 일을 하면서 좀 덜어지는 것 같아 기쁘고 즐겁다. 앞으로 계획은 아픈 유기견을 위한 호스피스 시설을 세우는 거다. 인간에게 버려진 애들이 죽는 순간까지 비참해지지 않도록 하고 싶다. 어떤 한 생명을 식구처럼 데리고 키운다는 건 그만큼 책임이 뒤따른다. 애완용으로나 기분에 따라 입양할 경우 키우다 여의치 않으면 쉽게 버리게 된다. 제발 그러지 말고 입양 결정은 신중하게, 입양하면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