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건설산업노조 울산지부 간부 A(50대)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울산 지역 건설공사 현장 관계자들을 찾아가 협박을 일삼다 경찰에 구속됐다. 안전규정이나 외국인 고용 등 건설현장 내 불법적인 부분을 찾아낸 뒤 이를 빌미로 “돈을 주지 않으면 집회를 열어 공사를 방해하겠다”고 압박했다. 또 실제로 일하지 않는 노조원의 임금 명목으로 매달 일정한 돈을 상납받았다. 울산경찰청은 2021년 10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A씨가 이 지역 건설현장 25곳을 상대로 갈취한 돈이 2억4000만원에 이른다고 파악했다. 울산경찰청 관계자는 “공사가 지연될수록 손해가 나기 때문에 공사현장 관계자들이 A씨에게 돈을 준 것 같다”고 전했다.
윤석열정부가 건설현장에서 횡행하는 갈취·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에 칼을 빼들고 ‘엄정 단속’ 의지를 재강조했다.
전국 곳곳 건설현장에 만연한 조직적 불법행위는 특별단속 이후 속속 적발되고 있다. 지역 아파트 건설현장을 돌아다니며 조합원 고용을 강요하고, 노조전임비 등 명목으로 수억원을 뜯어낸 노조 간부들이 최근 검거됐다. 경남에서 지난 16일 한국노총 산하 노조 간부 2명이 공동공갈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은 2021년 9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부산과 울산, 경남 지역 대형 아파트 건설현장 22곳을 돌며 소속 노조원 채용을 강요하고, 공사 방해 등을 협박해 건설사 20곳으로부터 노조전임비와 복지기금 명목으로 2억원 상당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렇게 빼앗은 돈 대부분은 실질적인 노조 활동과 무관한 사무실 운영비나 소속 간부 급여, 상급 노조에 대한 회비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도에서도 비슷한 불법행위를 일삼던 한국노총 산하 모 건설노조 간부 3명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자신들의 차량으로 공사 차량 진출입로를 가로막아 공사 진행을 방해하거나, 외국인 노동자 출입구에서 신분증 검사를 하며 위압감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노조원 채용을 요구했다. 이들은 결국 고용이 이뤄지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공사 기간을 늘리는 식으로 임금을 받아가고, 이후 일을 그만두는 조건으로 퇴거비를 받는 등의 수법으로 수억원을 챙겼다.
수사 당국은 이들을 노조 본연의 활동이 아닌 갈취를 목적으로 결성된 ‘생계형 노조’라고 보고 있다. 대부분 노동계에 몸담은 적 없이 동네에서 알고 지내다 “같이 일 한번 하자”는 식으로 모여 노조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한국노총에 일정 금액의 조합비를 내면 노조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정부가 건설현장에서 불법행위를 근절하겠다는 강경한 의지를 보이면서 현장에서는 이를 반기는 목소리가 적잖다. 이날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서 현장 안전관리자로 일하는 50대 B씨는 “민주노총 소속 근로자들이 ‘똘똘 뭉쳐 현장을 장악하자’는 구호를 외치는 것을 보며 기겁한 적이 있다”며 “자기 노조원을 안 쓰면 정문을 막고 집회를 해버리니 매번 난감했다”고 토로했다. 건설현장 노동자인 C씨는 “곪다가 곪다가 터졌다고 생각한다”며 “현장에서 제대로 일하는 사람들 위해선 비리가 있다면 조사받고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임비 등 강요 땐 협박·공갈죄 적용… 신속제재·처벌강화 악습 뿌리뽑는다
정부는 건설현장의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현행 규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신속한 제재를 가하는 동시에 상반기 중에 부당행위 사전 차단에 필요한 입법 등 보완조치를 마련하는 투트랙 대응에 나선다.
국토교통부가 21일 법무부·고용노동부·경찰청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발표한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의 핵심은 신속한 제재와 처벌 강화다. 정부는 건설노조가 채용 강요, 협박 등을 통해 노조전임비나 월례비를 받는 행동에 대해서는 형법상 강요·협박·공갈죄를 적용해 즉시 처벌하기로 했다. 적용 혐의에 따라 10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아울러 기계장비로 공사현장을 점거하는 경우 업무방해죄, 위법한 쟁의행위는 노동조합법을 통해 제재할 방침이다.
특히 타워크레인 월례비는 ‘부당금품’으로 명시하고, 월례비를 받는 기사는 면허 정지를 내리기로 했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 당시 불응할 경우 자격 정지·취소가 가능한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던 것처럼, 타워크레인 종사자가 즉각적인 압박을 느낄 수 있는 제재를 통해 악습을 뿌리 뽑겠다는 취지다.
타워크레인 기사는 임대업체와 고용계약을 맺어 이에 따른 월급을 받고, 따로 시공사로부터 월 500만∼1000만원의 비용을 관행적으로 챙기고 있는데 이를 월례비라고 부른다. 원칙적으로 지급할 의무는 없지만, 월례비를 안 주면 기사가 자재를 천천히 인양하는 식으로 태업을 하거나 아예 인양을 거부하며 공사를 방해하는 사례가 허다해 ‘울며 겨자 먹기’로 지급해왔다는 게 시공사 측의 입장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실태조사로 확인된 건설현장 불법행위 2070건 중 타워크레인 월례비 지급이 58.7%(1215건)에 달한다. 가장 많이 월례비를 챙긴 노조원 조모씨는 2021년 8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모두 2억17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월평균 1700만원꼴이다.
국토부는 다음달부터 월례비를 받은 타워크레인 기사에 국가기술자격법을 적용해 최대 1년까지 면허 정지 처분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더해 건설기계관리법 개정을 추진해 월례비 강요와 점거 행위에 대해서는 사업자 등록과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처벌 수위를 강화해나가기로 했다. 불법행위에 대한 신고 활성화를 위해 불법행위 최초 신고자에게 신고포상금 등 인센티브도 제공할 예정이다.
정부는 건설현장에 만연한 불법하도급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도 마련했다. 불법하도급 의심 현장에 대한 상시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불법하도급 조기경보 알람 시스템의 기준·요건 등을 개선하고 단속체계도 고도화하기로 했다. 공사대금 연체로 근로자의 임금이 체불되는 일을 막기 위해 조달청의 대금 지급 시스템도 개선한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독점 상황을 과감히 깨고 새로운 대안 질서를 만들어야 하는 만큼 불법적인 부분에 대해 일단 강도 높게 제재하고, 그 이후 정상적 수요와 공급 질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치 구호 아닌 노조 본질에 집중할 것”
‘MZ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새로고침)가 21일 “정치적 구호가 아닌 노조 본질에 맞는 목소리를 내겠다”며 공식 출범했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에 출생한 세대를 말한다.
이날 서울 동자아트홀에서 열린 출범식에서는 LG전자 사람중심사무직노조,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등 8개 노조가 함께 첫발을 뗐다. 송시영(31) 새로고침 부의장은 “우리는 지극히 상식적인 말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주목받을 일인가 싶다”며 “아마 기존 노조에 대한 안 좋은 인식과 새로운 변화에 목마른 국민적 공감대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여야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노조 본질에 맞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노조 본질에 불필요한 정치 편향적 구호가 아닌 미래 노동시장에서의 다양하고 올바른 입장을 대변하는 의지를 나타내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새로고침은 근로조건을 향상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한편,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바꾸고 노조를 만들지 못한 86% 노동자의 단결권 실현에 주목할 방침이다. 또 새로운 쟁의행위 방식을 연구해 갈등 비용을 줄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정규직의 공사일반직 전환 등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공정을 바로잡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유준환(32) 새로고침 의장은 “본질만 보고 편견 없이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최근 노동계 현안인 회계 투명성 강화에 관해 송 부의장은 “노조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기금은 노동의 대가로 이뤄진 것”이라며 “이 부분은 정말 깨끗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새로고침이 시선을 끄는 이유는 법치와 원칙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새로고침의 옳은 소리는 빠른 속도로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