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국 생산 韓반도체 수준 제한”… 삼성·SK ‘비상’

美 반도체 보조금 28일부터 신청
수혜 땐 10년간 中 투자는 금지

美, 2023년 10월 연장 여부 결정
“中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韓기업과 심도 있는 대화” 여지
中 견제 ‘칩4’ 공급망 강화 압박

미국 상무부 고위당국자가 한국 기업들이 중국 내 공장에서 일정 기술 수준 이상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한도를 설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23일(현지시간) 밝혔다. 상무부는 반도체지원법에 따라 28일부터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기업에 제공하는 생산 보조금 신청도 받는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경우 10년간 중국 투자는 금지된다. 반도체와 관련한 미국의 대(對)중국 수출 통제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중국에 생산 공장을 둔 한국 기업의 고심이 깊어질 전망이다.

 

앨런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담당 차관은 이날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워싱턴에서 개최한 한·미 경제안보포럼에서 삼성과 SK하이닉스에 제공한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1년 유예가 향후에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기업들이 생산할 반도체 수준에 한도(cap on level)를 둘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에스테베스 차관은 한도의 의미에 대해 “지금 기업들이 어떤 ‘단(layer)’의 낸드를 생산하고 있다면 그 범위의 어느 수준에서 멈추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무부는 지난해 10월7일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게 하는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다만 외국기업이 소유한 생산시설의 경우에는 개별 심사로 결정하기로 했고, 특히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중국 현지 공장에 대해서는 1년 동안 미국 정부 허가를 신청하지 않고도 장비를 수입할 수 있도록 유예 조치를 통보했다.

 

美 ‘中 견제’ 의지 굳건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이 23일(현지시간) 워싱턴 조지타운대에서 ‘미국의 기술 리더십을 위한 반도체법과 장기 비전’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러몬도 장관은 반도체지원법을 설명하며 중국 견제 의지를 분명히 했다. 트위터 캡처

미국은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보다 기술 수준이 높은 반도체를 생산할 장비·기술을 중국에 판매할 경우 별도의 허가를 받도록 했는데 우리 기업은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는 만큼 유예 조치가 연장되지 않을 경우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오는 10월로 예상되는 미국 상무부의 중국 수출 통제 유예 연장 결정에는 변수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에스테베스 차관은 “어떤 단에서 범위가 멈출지는 중국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지만 우리는 한국 기업들과 심도 있는 대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태도에 따라 수출 통제 기준도 바뀔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겠다는 제재 차원이지만 중국 진출 기업으로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위기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서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우시 D램 공장, 충칭 후공정 공장,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 낸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 정부 관계자의 언급일 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온 것은 아니다”며 “아직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미국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상무부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향후 5년간 보조금 390억달러(약 50조원)를 지급하는 보조금 신청을 받는다. 미국은 지난해 8월 반도체지원법을 제정하며 미국 정부 지원을 받으면 10년간 중국 등 우려 대상국에 설비 투자를 하지 못하게 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을 넣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2024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고, SK하이닉스도 첨단 패키징 공장과 연구개발(R&D) 센터 건설 계획을 밝히고 부지 선정에 나선 상태다.

 

미 상무부 등에 따르면 28일부터 미국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희망하는 기업들이 투자의사를 밝히는 이해관계 진술서(statement of interest) 접수 절차가 시작되고, 이후 사전 신청을 거쳐 정식 신청이 있을 예정이다. 하지만 다음달 15일까지 사전 신청 형식 등에 대한 의견 수렴 절차 등이 예정돼 있어 신청 세부 사안 등이 확정되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한국·미국·일본·대만이 ‘칩4’로 불리는 4자 간 반도체 공급망 회복력 작업반 본회의를 개최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24일 “미국이 미국 재대만협회(AIT) 주관하에 반도체 산업 공급망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자 지난 16일 미·동아시아 반도체 공급망 회복력 작업반 화상회의를 주최했다”고 밝혔다. 회의에서는 반도체 공급망 강화 방안 논의가 이뤄졌으나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나 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 조항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