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응급의료… 살릴 수 있었던 환자 年 1만명 [심층기획-붕괴 위기 필수의료 살리자]

(1회) 생명 골든타임 지키려면

2021년 79만 여명 중 적정시간 넘기 일쑤
내원 환자 7.6%인 6만302명 회생 못해
대구 9.5%·광주 5.4% 지역 격차 심해

정부, 권역별 센터 확충·수가 인상 제시
의료계 “수요 많은 권역위주 집중 투자
성공 모델 확보해 확대 하는 게 효과적”

“체스페인(chest pain·흉통)은 언제부터요? ECG(electrocardiogram·심전도) 괜찮아요? BP(blood pressure·혈압)는요? 몇 분 뒤 도착하세요? 네, 준비하겠습니다.”

토요일이었던 지난 18일 경기 안양시 한림대성심병원의 경기서남 권역응급의료센터. 당직 중인 이형민 교수(응급의학과)는 오후 7시쯤 전용폰을 통해 119구급대원으로부터 80대 남성이 곧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자 분주히 움직였다. 5분쯤 뒤 구급 차량이 센터에 도착하자 전공의와 간호사들이 달려들어 환자 상태 파악 및 검사에 돌입했다.

“생명 살리자” 안간힘 경기 수원시에 위치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의료진이 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 아주대병원 제공

이 교수는 응급환자들의 중증도를 파악해 응급처치 및 진단, 치료, 거취 등을 결정하는 응급의학 전문의다. 그는 “하루에 보통 150∼200명 정도 응급환자가 센터를 방문한다”며 “이 중 60%가 중증에 해당하는 1∼3등급(소생·긴급·응급) 환자들”이라고 했다. 중증 여부와 무관하게 일단 큰 병원으로 몰리는 환자들에 따른 업무 과부하로 코피 등 경증 환자들은 작은 응급실을 찾았으면 하지만 ‘처음 겪는 증상’에 놀란 환자들을 내치긴 어렵다.



한 달에 9번 당직을 선다는 이 교수는 이날 중증 2구역 환자들을 맡았다.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적게는 30∼40명, 많게는 50명까지의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 그는 “오늘은 전문의 3명이 같이 근무해 비교적 여유가 있는 편”이라며 “1시간에 최대 10명의 환자를 진료하면서 중간중간 하루 평균 50통의 119 전화까지 받아야 하니 밥 먹을 시간은커녕 화장실 가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생명의 ‘골든타임’을 지키는 필수의료의 최전선, 응급실이 한계상황에 다다르고 있다. 필수의료 취약지 중증·응급 환자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을 만한 병원·의사를 찾지 못해 아우성이고 수도권 환자 보호자들은 긴 대기시간 등으로 가족을 잃을까 봐 발을 동동 구른다.

중증외상은 1시간, 심근경색은 2시간, 허혈성 뇌졸중은 3시간이 골든타임이다. 현실은 다르다. 26일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2021년 전국 165개 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한 79만여명 환자의 발병 후 내원 소요시간은 중증외상 3.83시간, 심근경색 4.98시간, 허혈성 뇌졸중 5.96시간에 이른다. 중증응급환자의 적정시간 내 응급의료기관 미도착률은 2018년 50.3%에서 2021년 51.7%로 늘었다.

사진=gettyimagesbank 제공

이러한 이유 등으로 내원환자의 7.6%인 6만302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가장 높은 대구(9.5%)와 낮은 광주(5.4%) 간 차이가 4.1%포인트나 됐다. 응급환자들이 취약지에서 전국 평균의 의료서비스를 받았더라면 1만명가량은 목숨을 건졌을 것이라는 추산이 나온다. 2021년 7월 전남 여수국가산단 폭발사고로 심각한 화상을 입었지만, 인근에서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해 여수, 광주 등을 전전하다 14시간 만에 서울에서 치료를 받았던 A씨는 “그때 ‘서울에서는 70%가 살고 지방에서는 70%가 죽는다’는 말을 실감했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지난달 31일 ‘필수의료 기본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이달 8일 중증·응급 분야 세부대책인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안’을 공개했다. 전 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골든타임 내 중증·응급, 분만, 소아진료를 제공받는 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이 목표다. 중증·응급 환자에 대한 신속하고 적정한 이송과 전달, 최종치료를 위해 의료체계를 개편하고 물적·인적 인프라를 확충하며 의사·병원에 대한 보상을 늘리겠다는 게 골자다.

의료계는 야간·휴일 당직이나 수술 인력에 대한 직접적 보상 및 상급종합병원 등의 필수의료 기능 강화 방안 등을 긍정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인력 확충 방안이나 구체적인 재원 계획이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 센터장인 정경원 아주대의대 교수(외상외과)는 “애초 전국에 5∼6개가 적정하다고 거론되던 권역외상센터가 지역안배 등의 정치적 이유로 17곳으로 늘었다”며 “인구 980만의 경기남부와 67만의 제주 센터의 기능과 역할이 같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무작정 늘리기보다는 수요가 많은 권역 위주로 1∼2년 집중 투자한 뒤 면밀한 평가·분석을 거쳐 성공모델을 확대해가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형민 교수 역시 한정된 의료자원을 어디에 집중 투입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효과적 배분을 강조했다. 그는 “매년 1000만명이 응급실에 온다”며 “2500명의 응급의학 전문의가 모두를 진료할 수는 없다. (중증인) 600만명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기본대책안이 현행 지역·과목·병원 간 분절적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없는 짜깁기 대책안이라는 혹평도 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언제 어디서 환자가 발생하더라도 이들이 응급실을 가거나 119를 타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배후진료나 수술까지 받을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며 “이번 대책은 응급실에 가는 것까지만 돼 있고 이후엔 환자나 보호자들이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가 이전보다 진일보한 대책을 제시한 만큼 이번에는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 재정 투입’이라는 대통령 지시를 감안하면 필수의료 공백 위기를 없애겠다는 정부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며 “정부는 이송과 치료, 지원 등 관리 주체의 유기적 연계 방안을 고민하고 현장 의견을 경청해 보다 정교한 시행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