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순신 임명 하루 만에 낙마, 인사 검증하긴 한 건가

아들 학교폭력 드러나자 사퇴
고위공직 지원은 몰염치한 짓
검사 출신 국수본부장도 논란

신임 국가수사본부장(국수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그제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로 임명 하루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 변호사 임명 결정을 임기 시작(26일)을 하루 앞두고 취소했다. 정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한 경찰청도, 1차 검증을 맡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도, 임명한 대통령실도 아들의 학폭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이미 부실 검증으로 곤욕을 치렀던 윤 정부의 인사 검증에 또다시 구멍이 난 것이다.

2017년 한 유명 자립형 사립고에 다니던 정 변호사의 아들은 동급생에게 8개월 동안 언어폭력을 가해 이듬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재심과 재재심을 거쳐 전학 처분을 받았다. 대통령실은 어제 “고위공직자 후보 자녀의 학교생활기록부 등은 통상의 인사 검증에 활용되는 공적 자료 대상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책임회피에 급급하고 군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다. 불과 수년 전에 법정 공방까지 벌어진 관련 학폭 사건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정 변호사 아들의 학폭 가해 사실은 5년 전 이미 언론에 보도됐기에 대통령실의 설명은 더 설득력이 없다. 2018년 당시 언론 보도는 가해 학생의 아버지가 정 변호사라고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고위직 검사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검증 라인에 엄중히 책임을 묻고 구멍 난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대통령 지인이라고 해서 인사 검증의 칼끝이 무뎌졌던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당시 아들의 전학을 막기 위해 행정소송에 나서는 등 총력대응에 나섰던 정 변호사가 고위공직에 지원한 것도 몰염치한 짓이다. 정 변호사는 자신의 소송으로 피해 학생을 한층 더 극한 상황으로 밀어 넣지 않았나 반성해야 한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검사 출신을 전국의 3만 수사 경찰을 지휘하는 국수본부장에 임명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달 공개 모집에 응모한 3명 중 경찰 출신 2명을 제외하고 정 변호사를 단수 후보로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나머지 후보자들은 1급인 국수본부장으로 가기에는 직전 직급이 낮거나 정년이 임박했다는 문제가 있었다”는 게 여권 관계자 설명이지만, 경찰 수사마저 검찰 출신이 지휘하는 모양새를 만든 것은 부적절했다. 현 정부 들어 검찰 출신이 대통령실 주요 보직과 금융감독원장 등에 기용돼 ‘검찰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터라 정 변호사 기용은 신중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