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19세기에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토대는 인구 폭발이었다. 1800년부터 100년간 인구가 4배로 증가한 것이다. 인구학자 폴 몰란드는 저서 ‘인구의 힘’에서 “위생과 영양수준의 향상으로 영아생존율과 기대수명이 급증해 제국을 경영할 인력의 확보가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혁신기술만으로는 영국이 세계 최초의 산업강대국, 최강의 군사대국으로 우뚝 서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란 뜻이다.
로마제국 황제들이 출산율 높이기에 필사적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18년 25~60세 남자와 20~50세 여자가 결혼하지 않으면 세금을 물렸다. 이른바 독신세다. 여성은 결혼해도 아이를 3명 낳아야 납세 의무가 면제됐다.
강력한 정책추진 덕분에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때는 인구가 1억2000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제국 말기에 출산 기피가 만연해 5000만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인구 급감이 로마의 쇠망을 불러온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 인구는 경제력과 국방력의 원천이다. 국가 유지의 근본 동력이다.
한국이 로마제국의 전철을 밟는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출생아가 24만9000명으로 1년 새 1만1500명이 줄고 합계출산율도 0.78명으로 급락해 세계 최저 기록을 또다시 경신했다는 통계청 발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다. 정부가 저출산 대응을 위해 2005년부터 2021년까지 280조원을 쏟아붓고도 받은 낙제점 성적표여서 더욱 참담하다. 경제활동인구 감소는 생산력 저하와 성장률 둔화로 이어진다. 2060년대부터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골드만삭스의 경고는 합리적인 전망이다. 이래서야 이 나라에 미래가 있겠나.
특단의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취업난과 높은 집값, 육아·사교육비 부담 등 저출산의 근본 원인을 해소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겠지만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 인구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외국인 이민 수용과 재외동포 이중국적 부여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선진국의 고학력·고기술 인력과 아시아의 유능한 청년들의 이민은 국가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대안이다.
더 효율적인 방안은 일제강점기에 조국을 떠났던 고려인과 조선족에게 국적을 부여해 귀환시키는 일이다. 핏줄이 같은 한민족이고 한국인 문화와 역사의식을 지닌 이들이야말로 우선으로 받아들여야 할 자산이다. 외국인 이민을 많이 받아들인 유럽국가들에서 종교·문화 갈등으로 테러가 잦은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고려인은 구소련 지역에 50만명, 한국에 8만5000명이 있다. 조선족은 중국에 170만명, 한국에 71만명이 거주한다. 대부분 방문취업(H-2)·재외동포(F-4) 비자를 받아 입국해 단순노무(H-2)나 전문직(F-4)에 종사한다. 하나 체류기간(3년) 갱신이 안 되는 H-2 비자 소지자는 본국으로 돌아간 뒤 재입국 허가를 받아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좋으련만 바늘구멍이다. 귀화시험이 어려운 데다 자산 6000만원이나 1인당 GNI(국민총소득) 이상의 수입이 있어야 하는 탓이다. 나라를 잃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져야 했던 고려인과 조선족 후손을 이렇게 홀대하는 게 옳은 일일까.
이스라엘과 독일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소련이 해체된 1991년부터 러시아 유대인 100만명에게 국적을 줘 받아들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양국 유대인 6만명에게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독일은 소련 붕괴를 계기로 독일계 200만명을 재이민 형태로 수용했다. 이스라엘과 독일에서 인구절벽은 남의 나라 얘기가 된 지 오래다.
고려인과 조선족 국적 부여는 실리와 명분을 모두 취할 카드다. 탈북자들이 하나원에 입소해 적응화 교육을 받는 것처럼 이들에게 일정 기간 한국 역사와 민주주의, 시민교육을 한다면 한국 사회 동화도 빨라질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고려인과 조선족이 조국의 품에서 살 천부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