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로봇산업의 메카로 만들겠다며 2019년 3600억원을 들여 조성한 경남 마산 로봇랜드. 지난 7일 찾은 이곳에는 높이 10여m에 달하는 거대한 로봇 ‘가디언’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리뉴얼 기간을 거쳐 지난해 말 새 단장을 마친 ‘로봇팩토리움(로봇기술 시연장)’에는 VR시뮬레이터와 미래자동차 조립 체험을 위해 찾은 아이들로 북적였다. 이밖에도 로봇랜드에는 로봇과 연계한 22개의 놀이기구와 10개의 체험 관람시설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경남도와 창원시는 로봇랜드를 국내 최고의 테마파크이자 랜드마크로 만들 계획이었지만, 개장 3년 만에 ‘세금 먹는 하마’라는 오명만 남았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민간사업자와 소송을 벌였던 경남도와 창원시가 패소해 세금으로 1600억원이 넘는 배상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여파로 당초 수익사업으로 계획했던 호텔과 콘도 건립 등 2단계 사업 추진도 불투명하게 됐다.
마산 로봇랜드 조성사업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일원 126만㎡ 부지에 사업비 7000억원을 들여 민관 합동 개발 방식으로 로봇연구센터, 컨벤션센터, 테마파크, 호텔 등 관광 숙박 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최근 행정기관의 착오로 1400㎡ 규모 펜션용 부지 1필지를 제때 민간사업자에 제공하지 못하면서 개장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건립에 3600억원…행정실수에 1600억원 손실
민간사업자는 이를 문제 삼았다. 민간사업자는 ‘행정실수로 민간기업이 채무불이행 사태까지 맞게 됐다’며 2020년 2월 경남도와 창원시에 해지 시 지급금 등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 이어 지난 1월에 열린 2심에서도 법원은 지자체의 책임이 인정된다며 민간사업자의 손을 들어줬다. 경남도·창원시가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이 판결은 최종 확정됐다.
소 패소에 따라 2심 진행 중 발생한 이자를 포함, 민간사업자에 물어줘야 할 돈만 1660억원으로 산출됐다. 이 가운데 원금은 1000억원이며, 소송 지연 이자가 660억원가량인데 모두 세금으로 충당된다. 박준 경남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은 “결국 도민 혈세로 막아야 한다. 문제가 심각하다”며 “앞으로는 자치단체장이 공약 이행 사업을 할 때는 손실 발생 부분에 대한 각서라도 쓰고 진행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사실상 유일한 수익사업 모델인 로봇랜드 테마파크(놀이동산)가 해마다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해마다 수십억원의 운영비를 국민들의 혈세로 지급하고 있는데,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붓는 게 맞느냐며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 탓에 마산 로봇랜드 주변에 호텔과 콘도 등을 지으려던 2단계 사업은 현재로서는 추진 계획이 불투명하다. 한상현 경남도의원은 “지자체장이 치적 쌓기에 급급한 나머지 문제가 터지니 정작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 민자투자 유치 때에는 시·도민이 참여하는 제3의 감시·감독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청주시 매입 건물에 ‘수억 임대료 납부’ 무슨 일?
충북 청주시 제2임시청사에는 높게 솟은 굴뚝이 있다. 서류를 들고 바삐 움직이는 공무원들 사이로 보이는 ‘굴뚝’은 이곳이 과거 담배공장이었음을 보여준다. 1946년부터 2006년까지 담배공장이었던 이곳 청주시 제2임시청사(옛 연초제조창)는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가 열리는 등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떠올랐다. 과거 3000여명이 연간 담배 100억 개비 이상을 생산한 곳으로 역사성과 상징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청주시는 2010년 350억원의 예산을 들여 옛 연초제조창 부지를 KT&G로부터 사들였다. 2014년엔 정부 공모사업을 통해 이곳에 약 5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 도시재생사업을 벌였고 2021년 ‘문화제조창’으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는 청주시 신청사 건립계획에 따라 2022년 3월부터 문화제조창 2층을 제2임시청사로 쓰고 있다. 산업화의 역사가 녹아든 문화제조창을 청주시 임시청사로 사용한다는 소식에 지역 주민과 상인들은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문제는 시가 세금으로 매입한 이곳에 임시청사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매달 1억원 이상의 월세를 납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주시의회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청주시는 2024년 10월까지는 월 1억500만원, 2024년 11월부터는 월 1억1200만원의 임대료를 내야 한다. 2023년부터 따져도 6년간 월세는 79억6000만원이다. 여기에다 월 5500만원인 관리비 합계 39억6000만원까지 더하면 총 119억2000만원이 들어간다. 이와 별도로 임시청사 리모델링 비용으로 약 50억원의 세금이 추가로 투입됐다.
이처럼 2010년 세금으로 문화제조창 부지와 건물을 매입했음에도 청주시가 별도의 임대료를 납부하는 이유는 복잡하다. 앞서 시는 2017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함께 부동산 투자회사 ‘청주문화제조창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리츠)’를 설립했다.
시는 이 과정에서 옛 연초제조창 본관건물(현 제2임시청사)을 55억원에 현물출자했다. 이에 따라 시는 리츠의 지분 43%를 확보, 대주주가 됐고 LH는 19%, HUG는 38%의 지분을 각각 나눠 가졌다. 역사적 공간을 적극 활용, 임대사업을 통해 수익을 얻겠다는 계산이었다. 이때부터 이곳의 주인은 ‘청주시’에서 부동산투자회사 리츠로 바뀌게 됐다.
시가 대주주로 참여한 리츠는 옛 연초제조창 건물을 1021원을 들여 리모델링했다. 대주주인 시는 약 1600억원에 이 건물을 매입했고, 계약에 따라 리츠가 청산되는 2029년 소유권을 되찾게 된다. 애초 시 소유 건물인 연초제조창을 부동산리츠회사에 소유권을 이전, 다시 예산을 들여 사오는 구조다. 박승찬 청주시의원은 “시민의 세금은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수억원의 임대료는 물론 최근 시청사 설계 재공모까지 나서는 등 부수적 비용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주시는 이와 별도로 사업비 3200억원을 투입, 2025년 착공을 목표로 청주 상당구 북문로(2만8459㎡)에 전체면적 5만5500㎡ 규모로 신청사를 건립할 계획이다.
◆레고랜드·알펜시아리조트에 수천억 혈세 줄줄
2018평창동계올림픽의 도시, 강원 평창군에 위치한 알펜시아리조트도 강원도에 수천억원의 채무를 남겼다.
앞서 강원도는 예산 1조6000억원을 들여 최초 조성한 뒤 2022년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민간기업에 7100억원에 매각했다. 수차례에 걸친 유찰 속 매각을 성사시켰지만 아직 3800억원의 채무가 남았다. 연 이자로 따지면 50억원이 넘는 금액이다. 여기에 최근 알펜시아리조트 매각 과정에서 ‘입찰담합’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경이 수사에 나서는 등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업이 추진된 지 10년이 넘어서야 문을 연 춘천 레고랜드코리아리조트(레고랜드)도 상황은 비슷하다. 강원도가 레고랜드 운영사인 영국 멀린 엔터테인먼트에 향후 100년 동안 춘천 하중도 부지를 무상사용하도록 해 이 기간 동안 임대수입이 전무해졌다. 또 레고랜드로 들어가는 진입 교량에 예산 850억원이 별도 투입됐다. 이처럼 대규모 예산을 투입했지만 레고랜드 연 매출이 400억원 안 될 경우 강원도가 가져가는 배당금은 0원으로 산출, 세금낭비 논란이 불거졌다.
최근에는 강원중도개발공사(GJC)가 2020년 레고랜드 기반 조성사업을 위해 빌린 2050억원 규모의 보증채무도 도가 떠안게 됐다. 레고랜드와 알펜시아리조트 조성사업 등으로 도비 6000억원 이상이 사라진 셈이다. 강원도 관계자는 “현재 강도 높은 긴축재정을 통해 빚을 갚아나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