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주택 84% 지방에 몰려… 최악 시나리오는?

1월 주택통계, 10년 만에 최대 물량
전월比 10.6%↑… 14개월 만에 4배
집값 하락·PF 대출부실 가속 우려
정부 “아직 개입 단계 아냐” 선그어

전국의 미분양 주택이 10년 만에 7만5000가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미분양이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단기적으로 집값 하락세를 부추기는 것은 물론,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등 국내 금융시장 전반으로 충격파가 전달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건설업계에서는 부동산 경착륙을 막기 위해 정부 차원의 미분양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부는 아직 개입할 단계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서울 시내 한 공사현장. 연합뉴스

28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1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전국 미분양 주택은 7만5359가구를 기록했다. 전월(6만8148가구) 대비 10.6% 증가한 수치로 10년2개월 만에 최대치다. 업계에서는 상반기 안에 미분양이 10만가구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2020년 말 1만9005가구, 2021년 말 1만7710가구였던 미분양 물량은 불과 1년 남짓한 기간에 4배 넘게 불어났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들어 기준금리 인상과 경기침체 우려 등의 영향으로 증가세가 가팔라지면서 지난해 11월과 12월은 한 달 만에 각각 1만가구씩 증가했다. 지난달에는 증가폭이 다소 둔화했지만 고금리 추세가 이어질 공산이 큰 만큼 미분양 물량이 쉽게 해소되긴 어려울 전망이다.

 

미분양 주택 10채 중 8채는 지방에 몰려 있다. 지난달 수도권 미분양은 1만2257가구(16%), 지방은 6만3102가구(84%)였다. 공사가 끝난 뒤에도 분양되지 못해 이른바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7546가구로, 전월 대비 0.4% 증가했다.

정부는 아직 시장에 개입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1월 미분양이 늘어난 지역은 외곽이거나, 분양가가 인근 시세보다 높았던 곳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미분양 리스크가 심각해진 것은 아니고, 지난해 4분기 분양 물량이 늘어난 데 따른 일시적인 증가 영향도 있다는 게 정부 해석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분양가와 주변 시세의 마찰 때문에 생긴 소비자들의 소극성을 어떻게 세금으로 부양하느냐. 이건 반시장적이고 반양심적 얘기”라며 미분양 매입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반면 건설업계는 급격한 미분양 물량 증가가 부동산 경착륙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다수 민간 사업장에서 선분양제를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분양은 곧 자금난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지난해 충남 지역 종합건설업체 6위인 우석건설과 경남 창원 중견종합건설업체 동원건설산업이 부도 처리된 데 이어 최근에는 전국 시공능력평가 순위 83위인 대우조선해양건설이 회생절차에 돌입하기도 했다.

 

◆미분양 84% 지방 편중… 자금력 약한 중소건설사 줄도산 위기감

 

정부의 1·3대책 이후 주택 거래량이 되살아나고 있지만, 부동산 경기 회복세를 점치기에는 여전히 부정적인 신호가 산적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전국 미분양 주택 규모가 최근 10년 새 최대 규모인 7만5000가구를 돌파하면서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28일 주택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분양 주택의 위험성은 물량 자체보다는 증가 속도와 지역 편중성에 있다. 전국 미분양 주택은 글로벌 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16만6000가구로 정점을 찍었다가 부동산 경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던 2021년 하반기에는 1만4000가구 안팎까지 떨어진 이후에는 다시 꾸준히 증가세다. 지난해 1월 2만가구를 돌파한 미분양 규모는 7월 들어 3만가구대에 진입했고, 9월에 4만가구를 돌파했다. 11월과 12월은 각각 한 달 만에 미분양이 1만가구씩 증가했다.

 

미분양이 계속 쌓이면, 집값이 추가로 하락할 것이란 기대 때문에 거래절벽이 계속되고 분양경기가 다시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아파트를 지어도 잘 팔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면, 부동산 업계로 자금이 흘러오지 않게 된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와 같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우려로 건설사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거나 심지어 부도를 맞게 될 수도 있다. 미분양 문제가 실물경제로 번지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1월 주택 착공 실적은 1만5612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17.2% 줄었다. 지난달 아파트 분양실적은 1825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90.7%나 급감했다.

 

특히 지방 건설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달 미분양 주택의 84%가 지방에 몰려 있다. 정부가 1·3대책 등 각종 규제 완화를 통해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 지역을 규제지역에서 풀고, 청약 문턱도 낮췄다. 규제 완화 결과 수도권 분양경기가 먼저 회복세를 타면서 지방은 더 깊은 미분양 늪에 빠졌다.

 

수도권 소형 주택이 먼저 입주자를 모집하면서 중·대형 미분양 비중은 크게 늘었다. 85㎡ 초과 중대형 미분양은 전월 대비 25.9% 증가한 8926호가구였고, 85㎡ 이하 미분양은 6만6433가구로 전월 대비 8.8% 늘어나는 데 그쳤다.

 

주택업계는 정부가 나서서 조속히 미분양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미분양이 나면, 낙인효과로 입주자를 모집하는 게 더욱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업계의 미공개 물량을 감안하면 실제 미분양 물량은 정부 집계치의 2배 수준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유동성 지원과 규제 추가 완화 등 시장개입을 통해 주택경기를 회복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가 미분양 대책을 직접 제시하면, 건설사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특정 민간 기업의 수요 예측 실패와 방만 경영 책임을 공적자금으로 보상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하락세를 타고 있는 집값을 정부가 세금으로 떠받칠 경우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빼앗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해 말 취약계층을 위한 전세매입임대 사업의 일환으로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인 서울 강북구 ‘칸타빌 수유팰리스’ 36구를 총 79억4950만원에 매입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는 “건설사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직접 나서 “세금이 아닌 내 돈이었다면 과연 지금 이 가격에 샀을까 이해할 수 없다”고 거들기도 했다.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전문가들도 아직 정부가 미분양 문제에 직접 개입할 시점이 아니라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부동산 경착륙 방지를 위해 보완대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절대적인 수치가 많다고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미분양) 증가세가 굉장히 가파른 것은 확실하다”면서 “서울과 수도권에서 분양 물량이 소화되면서 양극화 현상이 커지고 있고, 시장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주요 단지만 수요가 쏠리는 현상은 심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미분양을 직접 구입해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게 부담이 되면, 무주택·1주택자가 미분양을 살 때 취득세 감면과 양도소득세 면제 혜택을 주는 등 다른 지원책을 주는 방법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미분양 쏟아지는데… 분양가 더 올라간다

 

전국에서 미분양 주택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분양가는 더욱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서울 강남 3구 등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의 분양가 산정에 활용되는 기본형 건축비가 3개월 만에 올랐다. 전반적인 건설 원가가 상승한 만큼 분양가 상한제 적용지역은 물론, 다른 지역까지 일정 폭의 분양가 인상이 불가피해졌다.

 

국토교통부는 주요 건설자재 가격과 노무비 등의 가격변동을 고려해 3월부터 적용되는 기본형 건축비 상한액을 2.05% 인상한다고 28일 밝혔다. 이에 따라 ㎡당 건축비 상한금액(16∼25층 이하, 전용면적 60∼85㎡ 기준)은 190만4000원에서 194만3000원으로 올라갔다.

 

국토부에 따르면, 건설자재 가격·노무비 인상에 따른 직접공사비 상승분이 1.21%포인트, 이와 연동된 간접공사비 상승분은 0.84%포인트였다. 특히 지난 3개월간 레미콘 가격이 15.2% 급등했고 합판 거푸집은 7.3% 올랐다. 반면 고강도 철근 가격은 9.9% 떨어졌다.

 

노임 단가도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보통 인부가 2.21%, 특별 인부는 2.64%, 콘크리트공은 3.91% 올랐다. 개정된 기본형 건축비는 올해 3월 이후 입주자 모집 승인을 신청하는 단지부터 적용된다.

 

정부는 공사비 증감 요인을 반영해 기본형 건축비를 매년 3월 1일과 9월 15일 두 번 정기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고시 이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고강도 철근과 레미콘 등 주요 건설자재 가격이 15% 이상 오르면 비정기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국토부는 이날 무순위 청약의 무주택·거주지 요건을 폐지하는 내용의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공포했다. 이에 따라 미분양이나 계약취소 등에 따른 무순위 청약의 경우 해당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다주택자들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28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프레온) 아파트 공사현장 모습. 뉴시스

당장 이달 중 무순위 청약을 시작하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포레온)을 비롯한 일부 단지가 규제 완화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하지만 무순위 청약 요건 완화 효과는 입지가 뛰어나거나 분양가 경쟁력이 있는 단지 등으로 제한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지민 월용청약연구소 대표는 “최근 2년간 분양시장에 나온 단지는 규제 완화를 적용받을 수 있겠지만, 수혜 단지는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며 “이미 급매로 나온 단지보다 분양가가 훨씬 높거나 선호도가 떨어지는 입지에 위치한 단지는 무순위 청약요건이 풀린다고 해도 수요자의 선택을 받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